△왜 우리는 억압에 저항하는가?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기계들이 만들어낸 인공 자궁(Matrix)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된다. 인간의 즐거움, 슬픔, 분노 등 이런 것들이 AI의 에너지로 쓰인다. 그런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인간의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시킨다.’

이것은 1999년에 나온 ‘메트릭스(The Matrix)’라는 영화의 줄거리이다.

이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은 현실과 꼭 같은데, 자신이 있는 곳이 현실이 아니라 프로그램 속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

허공 위를 걸을 수도 있으며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도 있다.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의 믿음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종종 내가 꿈으로 꾸었던 일이 현실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될 때, 혹은 어떤 물건을 놓아 둔 장소를 분명히 아는데 그곳에서 그 물건을 찾을 수 없을 때, 또는 아침에 반갑게 인사했던 옆집 아저씨 부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세상을 의심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이 영화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의 허구성을 알게 된 몇몇의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현실로 믿고 살아가는 타자들에게 그 허위성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이다. 그것이 억압이라고 여겨지 않는 사람에게 그것은 억압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들은 애써 억압기제를 찾아내고, 그 억압의 부당성을 폭로한다. 그들의 말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아도 그들은 끊임없이 억압기제에 저항한다. 현실의 세계는 매트릭스의 세계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런데, 인간은 왜, 도대체 왜 억압에 저항하는가? 왜 목숨을 담보로 저항을 멈추지 않는가? 1987년 6월 항쟁, 1980년 5월 광주, 1970년 11월 전태일의 죽음, 1960년 4월 민주화 운동, 1945년 신탁통치 반대 운동, 1919년 3·1운동….

일련의 사태가 있는 동안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온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 버린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때 그들이 하는 운동은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집안 말아 먹는 짓’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 일을 했다.

△김구는 왜 독립 운동을 하였나?

물론 일제치하의 독립운동가들 역시 ‘독립운동은 집안 말아 먹는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쳤는가? ‘백범일지’를 읽으며 백범이 광복을 위해 평생을 바치게 된 어떤 이유를 찾고 싶었다. 무엇이 일제라는 억압과 싸울 수 있게 하였는지, 온갖 고초와 수모를 겪으면서도 독립운동의 뜻을 굽히지 않을 수 있게 한 어떤 신념, 그것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백범이 독립운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것은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어떤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도리어 김구라는 인물이 건방져 보이기까지 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호를 ‘백범’으로 고친 이유를 ‘백정, 범부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백범은 백정과 범부의 앞 글자를 따온 말이다.

이 얼마나 건방진 말인가? 자신이 독립의 유일한 잣대인양 떠들지 않는가.

독립운동에 가담하기 전 그는 17세에 과거시험의 폐단을 알았고, 18세에 동학에 가담을 하였고, 21세에 일본인 ‘쓰치다’를 죽였다.

그렇게 그는 감옥을 전전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립운동가가 되어갔던 것이다.

개인적 자각, 깨달음, 성찰 그런 것들을 통해 독립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살다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에게 있어서 독립운동이란 삶의 연장선일 따름이며 그가 독립운동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아니었을까?

△김구와 이완용

다시 말하지만 ‘백범일지’에는 그가 독립운동에 매진하게 된 거창한 이유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는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김구’는 추앙을 받는다. 이와 반대로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으로 국민 모두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열심히 산 것으로 따지면 이완용도 마찬가지다. 그는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으로 정부 전권위원(全權委員)이 되어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였으며, 그 공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백작(伯爵)의 지위를 받을 만큼 일본 정부에 충성을 다하였다. 그에게 있는 잘못이란 어쩌면 열심히 살았다는 것, 일본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는 죄 밖에는 없다.

누가 더 열심히 살았는가를 따져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똑같이 열심히 살았음에도 그들에 대한 평가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상반된 믿음일 것이다. 이완용은 일본이 언제까지나 건재하리라 믿었다면, 김구는 언젠가 일본은 망할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믿음이 옳은지 그릇된 것인지 그들 스스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옳고 그름에 대한 답은 오직 역사만이 답을 내려줄 수 있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구는 어떻게 독립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목숨까지 내어 놓고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그의 믿음이 옳음을 무엇으로 확신한 것일까? 아무도 걸어본 적이 없는 그 길을, 자신의 신념만을 가지고 걸어가는 일, 짐작할 수 없는 미래를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는 일, 이것이 어쩌면 삶인지도 모른다. (김구와 이완용이 열심히 살았다는 점에서 같다고 했지만 바른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완용은 아무런 방해도 없는 편안한 길을 걸어갔지만, 김구가 걸어간 길의 목적지는 너무나 멀리 있었고, 그 길 또한 험난했기 때문이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어떤 믿음이든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그 믿음에 맞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믿음이 옳은가 그릇된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의 믿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 선택을 위해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것은 ‘나’라는 개인을 넘어 사회와 역사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이 아니라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것이리라.

‘백범일지’를 읽는 내내 그 시대에 내가 살았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며 화끈거리도록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금도 비굴하게 최대한 비굴하게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되돌아볼수록 씁쓸해지는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그러나 감히 나는 바란다. 가능한 한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길, 당당히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더 바란다면 옳은 삶을 살길 바란다. 적어도 김구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더라도 삶 앞에서 떳떳해지고 싶다.

삶을 진지하게 응시하며 그 속에서 진실된 믿음을 얻고 싶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