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김정은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독재자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를 독재자라고 표현하면서 김정은도 같다는 입장이다. 북한 당국으로는 그의 이 같은 발언이 그들의 최고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로 단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당국이 폼페이오를 북미협상 창구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정은을 몇 차례 독대한 미국의 협상 창구인 폼페이오의 교체를 요구한 것은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북한 당국은 수령의 절대적 권위를 손상하는 그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회담 결렬의 책임마저 전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막스 베버는 리더십을 전통적 리더십, 카리스마적 리더십, 합리적 리더십으로 구분하였다. 김정은의 리더십은 어디에 해당될까.

김정은은 북한식 당·국가 일원 체제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북한 인민의 절대적인 숭상을 요구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이다. 베버의 분류상 그는 군주의 전통적 권위와 카리스마적 권위를 공유하는 지도자 유형이다. 1984년생의 30대의 지도자인 그는 조부 김일성의 모습으로 부족한 카리스마를 보완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왕조국가인 북한 체제에서 그는 김일성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지난번 하노이 회담이나 이번 블라디보스토크 행차에서 그 모습은 재현되었다. 그는 김일성이 즐겨 쓰던 중절모, 인민복, 뿔테 안경, 옆머리를 쳐올린 헤어스타일, 걸음걸이까지 그대로 재연하였다. 그에게는 이러한 정치적 상징 조작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조언한 결과이다.

그러면서도 집권 8년차를 맞이한 김정은은 김정일과는 다른 정치적 제스처를 여러 면에서 보이고 있다. 그는 은둔자인 부친과 달리 대중 앞에 직접 나서기를 좋아한다. 그는 서구 지도자처럼 양복 차림으로 집무실에서 신년사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농구를 좋아하고 미국의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맨을 평양에 초청하기도 하였다. 부인 리설주와 나란히 팝콘을 먹고 공연장을 찾는 모습도 보였다. 2017년 신년사에서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하는 특유의 솔직한 화법도 보였다. 하노이 회담 후에는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가리게) 된다”는 의외의 경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리더십은 본질적 변화라고는 볼 수는 없다. 약간의 파격적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보화 시대의 65시간의 하노이행 열차 이동, 간이역 새벽 재떨이를 떠받쳐 든 여동생 김여정의 모습, 그의 현장 시찰시 지시사항을 기록하는 ‘적자생존’의 노 간부들, 평양 시민들의 열광하는 새벽 환영 행사, 모두가 왕조국가의 옛 모습이다.

이번 북러 회담출발 전 평양 역두 간부들의 환송행사도 마찬가지다. 북한 권력 2인자 상임위원장 최룡해(70)의 가슴을 두드리면서 당부하는 수령의 모습, 노령의 간부들이 수령 앞에 읊조리는 모습은 왕조시대의 모습을 재현했다. 북한의 언론은 최고 지도자 위대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김정은의 정치적 제스처가 변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리더십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의 명령은 북한체제에서 법 이상의 최고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의 리더십은 언제쯤 정상국가의 합리적 리더십으로 바뀔 것인가. 수령 절대론과 집단주의, 당 권력 독점과 병영 통제 사회가 지속되는 한 그의 리더십은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당권과 군권이 분리되지 않고 권력의 분립장치가 없는 땅에서 그의 권력의 독점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이나 베트남식의 집단지도 체제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 아직도 수많은 정치범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받는 현실에서 언론의 자유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체제 전반의 압제 상황에서 김정은의 리더십은 합리적으로 바뀔 수 없다. 북한의 개혁 개방이 그의 리더십 변화의 단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