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최근 대한민국의 밤은 어쩌면 예전보다 활기찬 모습을 보일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유행처럼 ‘야시장(夜市場)’을 개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야시장은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이던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비교적 산업과 경제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주요 도시에는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었기 때문에 서울, 부산, 대구는 물론 포항 등 주요 도시에서는 야시장이 개설되었던 것이다. 포항도 야시장의 역사는 이미 10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당시 포항의 상거래는 조선인들이 중심이 되는 여천시장과 지금의 중앙상가 위치에 즐비하였던 일본인 상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여천시장에서는 해가 뜨면 시장이 북적이다가 해가지면 철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당시 신문기사 등을 살펴보면 시장에는 노점들도 많았다. 주로 여인네들이 지역의 유명한 특산물이었던 돌김이나 청어의 머리를 자르고 몸통을 절반으로 갈라 내장을 제거한 후 염장 조미하여 말린 신흠(身欠)청어 등을 가지고 나와 호객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지금 철강경기의 변동에 따라 지역경제가 흔들리듯이 당시에는 청어 어획이 풍어(豊漁)냐 불어(不漁)냐에 따라 포항읍내 경기가 결정되었다. 여름철에는 시장을 여는 시간이 늘어나기는 하였지만 취급하는 것이 부패하기 쉬운 수산물이어서 어려움이 많았고, 선선한 저녁에는 어두워서 장사할 수 없었다. 이에 지역 상인들은 스스로 값비싼 전기료와 전등임대료를 감내하며 사활을 걸고 깜깜한 밤을 밝혀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야시장이었다.

1930년대에 전국적으로 유행하였던 야시장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물리적으로 장사하는 시간이 연장된데 다 야밤에 환하게 전등으로 밝혀진 시장거리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볼거리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최대한 짧은 시간동안 값비싼 전기료비용을 건지려는 상인들의 조바심으로 인해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인들을 단순 구경꾼으로 지레짐작한 상인들이 막말하거나 무시하는 사례, 큰손이 아닌 군것질하는 아이들을 홀대하는 사례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당시 야시장을 둘러싸고 ‘부인손님에 대한 응대 특히 공손하게 하자’, ‘태도문제, 언사와 함께 중요’, ‘모처럼 온 손님 고마운 생각을 가져라’등 지금도 그대로 인용할만한 기사들도 눈에 띄고 있다.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밤 도깨비 야시장은 이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올해도 4월5일부터 시내 곳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2015년에는 20만 명, 2016년에는 330만 명, 2017년에는 505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야시장이라고 해도 푸드 트럭과 같은 단순히 먹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야시장은 과거처럼 상인들이 사활을 건 단판승부가 아니라 일종의 축제와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된 셈이다. 과거에는 그저 깜깜한 밤을 밝히기만 해도 신기함에 사람들이 몰리는 매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은 적고 가볼 곳은 많은 시대가 되었다. 결국 지자체가 주도하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성공여부가 지자체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자체의 역할은 하드웨어인 자리를 마련해주는 데 그쳐야 한다. 야시장에 한번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두세 번 재방문하거나 관광방문객이 반드시 찾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에 포항에서 개최하는 야시장은 이왕이면 의미 있는 야시장이 되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먹거리라면 적어도 구룡포 대게, 흥해 부추, 곡강 시금치, 청하 돌미역, 신광 흥곡주, 장기 산딸기 등 반드시 지역산 농수산물을 이용하였다는 원산지표시까지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도심의 행사지만 지역 특산물도 함께 알리는 도농복합도시 포항다운 야시장으로 성공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