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대성당이 타고 말았다. 불을 끄고 살펴보니 뼈대는 멀쩡하다지만, 쌓아올렸던 뾰족탑이 쓰러질 때에는 나라와 백성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듯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유럽은 물론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도 같은 마음으로 불구경을 하고 말았다. 젊은 대통령이 이를 복원하겠다는 다짐을 발표하고 수다한 후원의 손길을 모은다지만 노트르담이 품었던 그간의 오랜 이야기는 이제 불꽃과 함께 영원히 사라졌다. 하룻밤 꿈처럼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린 그 불길이 전쟁이나 테러의 결과였다면 차라리 덜 아쉬웠을까. 그 모습을 더욱 빛나게 하려고 보수작업을 하던 중에 속절없이 불태워 버렸다고 하니, 이를 가까이서 바라본 파리 시민들은 그 마음이 어땠을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릎꿇고 찬송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표하는 모습이 가슴에 와 박힌다.

850년 역사라고 한다. 역사의 굴곡과 함께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기억을 담았을까. 프랑스혁명의 그늘을 견뎌 내었으며 2차 대전의 포화도 이겨냈을 터에 최첨단을 달리는 21세에 와서 그 치솟게 세워 올렸던 뾰족 첨탑이 스러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한숨과 탄식의 한순간으로만 기억할 것인가. 일년에 1천3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관광명소이기는 해도 노트르담대성당은 성당 즉 종교성을 가져야 하는 장소이다.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서있던 첨탐이 불길과 함께 스러지는 모습은 오늘 여러 모양으로 믿는 신앙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국이든 극락이든 구원과 해탈을 기대하며 개인적인 신심을 갈고닦느라 세상과 이웃 그리고 주변과 우리들 곁에 존재하는 힘들고 어려운 모습에 눈을 감는 이들에게 던져진 경고가 혹 아닐까. 필자에게는 개인의 성취와 성공에 심취하여 무한경쟁가도를 달려가는 현대인의 바쁜 일상에 울리는 경종으로도 들린다. 세느강 건너로 불타오르는 노트르담대성당을 바라보면서 닥쳐올 위기를 실제로 만나면 함께 무릎꿇을 수 밖에 없음을 스스로 미리 보여준 일이 아니었을까. 미세먼지, 대기오염, 지구온난화, 핵위험 등 인류가 공유하는 큰 문제들 앞에는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동체가 살아나지 않고는 이들 과제를 극복할 방법이 없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오해와 왜곡을 거듭해 가며 차별과 혐오를 무기삼아 내 편과 네 편을 끊임없이 가르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는 인간들의 부끄러운 모습이 한 자락 불길 앞에도 속절없을 것임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을까.

한 가지 신통한 기억은 맹렬한 불길 앞에는 오른쪽과 왼쪽이 따로 보이지 않았다. 시답잖은 시빗거리가 많은 듯 하여도 정말로 중요하고 진실로 급한 일에는 이념이 다 무언가 싶게 떠오르지도 않는다. 이웃과 공동체, 사람과 사회를 정말로 세우고 살리는 일에는 보수도 필요하고 진보도 있어야 한다. 정말로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정치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배워야 한다. 모두에게 잔인하였던 4월의 기억 앞에 오히려 겸허하게 ‘대한민국 공동체’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깎아내리고 밀어내는 정치 대신에 격려하고 함께 더하는 정치를 만나고 싶다. 실수와 과오를 살펴 반복하지 않게 할 일이며, 성과와 성취는 더욱 살아나도록 부추겨야 할 터이다.

밥도 짓고 쇠도 붙이는 불꽃이지만 한 숨 불길은 순간에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열정의 불꽃으로 세워 올리지만 무너뜨리는 불길도 분명히 보았다. 지어 올릴 때에 성실하게 열심히 해야 하지만 소중하게 지키는 일도 만만치 않음을 생생하게 보았다. 개인의 각성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필요와 할 일도 목격하였다. 잘 만들어야 하고 잘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