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펫 스토리’

보더콜리.

1990년대에 바텔 전화기의 광고 모델로 출연한 개가 있었다. 유명한 명견 래시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 개는 콜리(Collie)라는 품종이다. 콜리라는 이름은 고어(古語)로 ‘검정’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검은 털이 주류였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이 개를 남쪽으로 데리고 간 뒤 품종개량을 거듭하여 지금의 세이블(sable) 앤드 화이트 계통의 고급 이미지로 굳어졌다. 사람들이 흔히 연상하는 털이 길고 풍성한 모습의 콜리는 러프 콜리, 털이 짧은 콜리는 스무스 콜리라고 부른다. 보더 콜리(Border Collie)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의 국경에서 가축, 특히 양을 몰기 위해 콜리를 개량하였는데, 국경지역을 뜻하는 단어 보더(border)를 붙여 보더콜리라 불린다. 세이블(흑담비 모피와 같은 털발이 길고 실크같은 광택이 나는) 러프 콜리도 유명하지만 현재는 보더콜리가 세계에 더 널리 분포하게 되었다. 외모보다 능력 때문이다.

견종의 개념이 생긴 것은 사실상 200년밖에 되지 않는데, 현대사회의 개 품종화 과정에서는 외모지상주의의 사회상을 반영하듯 외모를 중요시 여긴다. 사람이 개를 선택할 때도 멋지거나 귀여운 외모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행동적 특징이 좋더라도 외모가 다르거나 좋지 않으면 다음 번식에서 제외시킨다. 몰상식한 번식가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품종기준과 다른 털색이나 모양을 가진 개들이 나타나면 열등한 개체로 치부하거나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 이렇게 대부분의 견종은 외모를 기준으로 하여 그 기준을 고착화 하면서 탄생하였지만 보더콜리는 전혀 다른 탄생 배경을 가지고 있다. 보더콜리는 양몰이를 해야하는 목동들에 의해 외모와 상관없이 몰이능력이 뛰어난 개체위주로 선택, 번식 되었다. 그 과정에서 견종에 상관없이 몰이능력이 뛰어나면 이종교배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심지어는 견종의 구분이 없는 잡종견이어도 능력이 뛰어나면 번식에 참여시켰다. 즉 외모라면 빠지지 않는 콜리끼리의 동종교배가 아닌 다른 견종이 번식에 사용된 이종교배를 통해 탄생한 견종이 보더콜리이다. 보더콜리는 이 때문에 매우 다양한 외모를 가지게 되었지만, 폭넓은 유전자 풀을 지니게 되었다.

러프콜리.
러프콜리.

외모보다는 능력이 우수한 개체의 지속적 선별, 사람과 함께 일을 하며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가지게 된 강인한 체력과 교감력 등 현재의 보더콜리 매력이 만들어지게 된 것인데, 보더콜리는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개로 유명하며, 그 명성에 걸맞게 학습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체이서’라는 보더콜리는 무려 1천22단어를 구분할줄 아는데 단어를 듣고 그 단어와 관련된 그림이나 행동을 선택할 줄 안다. 명사와 동사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 조합된 명령을 구별해서 알아듣고, 모르는 장난감의 이름을 들었을 때 소거법으로 유추해 내는 능력까지 있다. 게다가 보더콜리는 지능만 좋은 것이 아니라 뛰어난 체력, 민첩성을 가져 이를 바탕으로 스포츠에서도 두각을 보인다. 프리스비, 어질리티(장애물 달리기), 복종훈련, 플라이볼(테니스 공을 가지고 하는 릴레이 경주) 등의 도그 스포츠에서 보더콜리는 다른 견종과 경쟁하여 대부분 결승전에 올라간다. 플라이볼 대회 같은 경우에 ‘ABC(Anything But Collies) 룰’이라는 것이 있어서 보더콜리만을 가지고서 팀을 짜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정도이다.

현대사회에서 외모를 기준으로 품종기준을 만들고 그에 따른 번식을 하므로 유전적 문제는 해가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보더콜리는 품종으로 공인되면 생김새의 표준에 따라 번식이 제한될 것을 우려하여 등록을 계속 거부해오다 1977년에야 공인된 품종으로 등록하였다. 현재에도 보더콜리의 표준형은 다른 품종들과는 달리 몸 전체에 반점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색이나 패턴을 전혀 따지지 않으며, 흉터나 부러진 이빨 또한 도그쇼에서 감점요인이 아니다. 영국 보더콜리단체인 ISDS는 여전히 보더콜리의 탄생배경을 기초로 하여 견종을 보호하고 있지만 순종혈통이 강조되고 부모 모두 같은 견종으로 등록되어야 다음 세대가 순종으로 인정받는 캔넬클럽의 견종 등록 규칙과 쇼독 비즈니스 논리에 보더콜리는 도전받고 있다. 공인등록 이후 대부분 동종교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최근의 보더콜리는 안구기형과 관련한 유전병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게 되었는데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외모가 다가 아니다.

/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