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순직한 미 해병대의 희생을 위로하고자 건립된 ‘충령비’가 일제 강점기 일본군을 위한 ‘충혼비’였다는 주장이 나온 데 이어, ‘포항지구 전투전적비’도 일본인 흉상기단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이다. 본지에 의해 잇달아 보도된 이 문제들은 그 진실이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 한미가 일본군 충혼비에 해마다 헌화를 하고 일본인 흉상기단을 무심하게 기려온 게 사실이라면 이는 순국선열들이 통곡할 망동이 아닐 수 없다.

포항 향토사학자 이상준 씨는 10일 “현재 포항지구전투전적비는 일본인 ‘나카타니 다케사부로(中谷竹三郞)’의 흉상 부분 중에서 기단과 하단부까지는 그대로 재활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카타니 다케사부로’는 1907년 포항에 정착한 뒤 30년이 넘도록 살았던 일본인으로 구 포항시청 인근에 세워진 그의 흉상 기록이 사료에 남아있다. 포항지구 전투전적비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관리번호 33-2-25)로 1959년 3월 31일 육군 제1205건설공병단에서 건립했고, 1969년 4월 20일 현재 위치인 포항시 남구 송도동 311-7로 옮겨졌다.

이에 앞서, 김진홍 한국은행포항본부 부국장은 포항시 남구 송도동 포항기상대 앞에 있는 ‘미 해병대제1비행단 전몰용사충령비’가 1935∼1937년 일본군에 의해 건립된 ‘일본군 충혼비’라고 주장했다. 김 부국장은 1935년에 일본 기자들이 집필한 ‘포항지’라는 책에 있는 유사한 조감도를 공개했다. 이 책은 ‘충혼비’를 ‘제국재향군인회 포항분회(일본군)’가 세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이 경영했던 부산일보의 1937년 3월 14일자 경북면에도 같은 내용이 보도되고 있다.

미군 통역관으로 근무했던 이종만 씨가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문제의 충령비는 지난 2003년 5월 30일 국가보훈처에 대한민국 현충시설(관리번호 33-2-31)로 지정됐다. 1952년 12월 22일 구 포항역 광장에 최초로 건립된 이후 1969년 4월 현 위치로 이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년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기념해 ‘충령비’ 앞에서는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위한 위령제가 거행돼왔다. 이 주장대로라면 포항에서는 식민정책을 위해 대한민국을 침략한 일본 군대의 넋을 기려온 우스꽝스러운 꼴이 된다. 본지 취재 결과, 국가보훈처는 물론 지자체인 포항시와 한국자유총연맹 포항시지회에는 근거자료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인의 유물인 줄 모르고 해마다 향을 피우고 기념식을 거행해온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하루속히 진실을 밝혀내어 바로잡는 것이 맞다. 차제에 독립이나 호국 기념물 중에 또 다른 비슷한 사례가 없는지도 낱낱이 점검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