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곤영대구취재본부장
이곤영 대구취재본부장

지난주 친한 선배 사무실을 들러 TV를 켜고 인사청문회를 보려고 하니 그 형님이 대뜸 “짜증나게 그딴거는 뭐할려고 보냐. 이번 청문회에 나온 장관 후보들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세금탈루 등 구린 냄새 풀풀 풍기는 인물들 뿐이다. 사람이 그렇게도 없냐”고 혀를 찼다.

나라를 이끌어갈 정책결정자를 뽑는 인사청문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이런 이유는 뭘까? 이는 보수나 진보나 정권을 잡고 나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으려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60년부터 2000년 사이에 상원 본회의에서 장관 등 고위공직자들의 인준이 거부된 경우는 6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만큼 인사검증을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통령 인사 참모들이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 후보자를 압축해 보고 대통령이 승인하면 국세청과 연방수사국(FBI) 등이 청문회에 앞서 3~4개월간 신상을 검증한다.

후보자는 물론 부모, 배우자의 부모, 형제의 전과 기록, 납세기록 등 과거 자료와 사전 질문지를 토대로 후보자에 대해 싸그리 파헤친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들여다보면 후보자 면면의 경력은 화려하지만 각종 불·탈법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청와대 인사시스템이 이렇게도 허술한 것인지, 아니면 인사검증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인지 의심도 든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문성혁 해양수산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등 대부분의 후보들은 위장전입, 병역기피, 세금탈루,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음주운전, 성범죄 등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7대 인사배제원칙에 걸린다.

집값을 잡아야 할 최정호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서울 잠실 아파트와 경기 분당 아파트, 세종시 펜트하우스로 20억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의혹이 나왔다. 장관 지명에 이르러서는 월세 인생으로 급회전하는 꼼수를 부렸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이 고급외제차에 월세 240만 원짜리 아파트에 사는 등 ‘황제유학’ 생활을 하고 외유성 출장 등 각종 의혹에 모르쇠로 버티자 여당측으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해외 소득신고를 누락시키고 남편과 아들 관련 자료는 개인정보보호 등 이유로 못 낸다고 하는 등 청문회 자료제출을 거부한데 이어 2013년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과 식사했다며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신고해놓고, 당시 지역구 주민과 먹었던 점 등 의혹이 불거졌다.

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천안함 폭침은 ‘우발적 사건’이다. 박왕자 씨 피격 사건은 통과 의례였다”라며 이념과 대북관에서 문제를 드러내는 등 7명의 장관 후보자 대부분이 결격사유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발표 24일 만인 지난달 31일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고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조 후보는 거짓말을 해서 확인을 못했고, 최 후보는 국민 눈 높이에 맞지 않아 사퇴했다며 부실 인사 검증 문책 여론을 피하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줬다. 오히려 국민 눈높이에 맞춰 ‘7대 인사 배제 기준’ 강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5명의 장관 후보자에 대해 1기 내각과 마찬가지로 인사를 강행할지는 미지수지만 이번 인사로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팽배해질 것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7대 인사배제원칙을 지키지 못한 청와대 인사라인은 이번 인사청문회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보편타당성이 결여된, 내 편에만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