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경 호

작년에 핀 꽃과 올해 핀 꽃이 함께 피어있다

하나는 시컴한 숯덩이처럼 검은 불을 켜고

다른 하나는 붉은 불을 밝혀 펄펄 끓고 있다

지난 겨울 철새처럼 모두가 떠나간 후

왜 앙상한 가지에 남아 눈보라에 떨었는지 모르지만

살갗 에이는 풍장의 세례 끝에

견고하고 환한 검은 꽃을 피웠다

까치밥도 되지 못한 시디신 고집이

신생의 붉은 꽃과 함께

가는 봄 푸른 불꽃 속에서

검고 환한 불을 밝히고 있다

작년에 핀 꽃과 올해 핀 꽃이 함께 석류나무에 매달려 있다는 시적 발상을 통해 시인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아니, 우리 자신에게도 어쩌면 이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시인은 거센 눈보라 속에서 견디며 꽃을 피우고 결실에 이르는 석류나무의 생명력이 죽음마저도 아름다운 생명의 폭인 꽃으로 피어나게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세상을 향해 던져넣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