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정구지’ 대신 ‘부추’라는 세련된 이름이 있었다

포항시 남구 연일읍의 부추 농가. 수확이 한창이다.

아마도 늦봄 무렵이었을 터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1970년대 후반, 서울 장충동 하숙집.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 예닐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비 오는 늦은 오후. 하품을 댓 발이나 길게 하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가 ‘먹고 싶은 고향 음식’으로 튀었다.

 

“이른 봄 첫 부추는 아들에게 주지 않고 사위를 준다” “아들이 양기를 세우면 며느리가 좋고, 사위가 양기를 세우면 딸이 좋다”는 희한한 표현이다.

경상도 출신 하숙생이 불쑥 내뱉었다. “오늘 같은 날, ‘정구지 찌지미’나 ‘부치 무쓰모’ 좋겠다.”

서울 태생의 하숙집 주인아주머니. ‘부치 무쓰모’가 ‘부쳐 먹었으면’이라는 정도는 알아들었다. ‘정구지’는 요령부득, ‘찌지미’는 낯설다. 경상도 출신들은, 불행히도, ‘정구지’가 부추임을 몰랐고 ‘찌지미’가 부침개라는 세련된 이름을 가지고 있을 줄도 몰랐다. 또 다른, 혼란스러운 일도 있었다. ‘찌지미’가 뭐냐는 질문에 “찌지미요? ‘적’도 몰라요? ‘적’요, ‘정구지 찌지미’는 ‘정구지 적’을 말하는 거래요” 이번에는 ‘적’이 뭐냐는 말로 더 시끄러워졌다. 다행히, ‘적’은 부침개이며 ‘전(煎)’을 말한다는 사실은 곧 알아차렸다. “서울 사람들은 ‘정구지’를 반드시 부추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아주아주 오래 뒤에야 알았다.

그날 ‘정구지 찌지미’는 결국 먹지 못했다. 정구지가 뭔지 알아야 정구지 찌지민지 뭔지를 만들 것이다. 그날의 슬픈 결론. “서울에는 ‘정구지’라는 채소가 없으며, 그건 먹을 것 없는 불쌍한 경상도 산골 사람들만 먹는 아주 희한한 풀.”

 

부추 비빔밥. 부추와 무생채, 콩나물 등이 재료다.
부추 비빔밥. 부추와 무생채, 콩나물 등이 재료다.

부추는 동북아시아 세 나라가 널리 먹었다. 중국, 일본도 부추 나물은 즐겨 먹는다.

부추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부추는 에로틱(erotic)하다. 부추를 ‘기양초(起陽草)’라고 부른다. 양기를 북돋우는 채소라는 뜻이다. ‘정구지’를 ‘精久持’라고도 주장한다. 남자의 정기를 오랫동안 유지한다는 뜻이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른다. 별다른 근거도 없다. “이른 봄 첫 부추는 아들에게 주지 않고 사위를 준다”라는 얄궂은 표현도 있다. “아들이 양기를 세우면 며느리가 좋고, 사위가 양기를 세우면 딸이 좋다”는 희한한 표현이다. 어디서, 누가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오리무중이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그저 ‘카더라’ 혹은 ‘아니면 말고’ 정도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부추가 ‘게으름뱅이 풀’이라는 것이다. 부추가 남자의 정력에 좋으므로 부추를 많이 먹은 부부는 들에서 일하지 않고 늘 방 안에서만 지낸다고 붙인 이름이다. 한편으로 부추는 생명력이 강해서 특별히 손을 보지 않아도 잘 자란다. 하여, 게으름뱅이도 쉽게 키울 수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근거 없고 터무니없다. 우리보다 의학, 과학 지식이 뒤떨어졌던 조선 시대에도 이런 식의 설명은 없었다.

‘산림경제’ ‘의림촬요’ 등 조선 시대 의학서, 백과사전에는 부추를 약으로 사용한 여러 가지 실례가 있다. 부추, 잎, 대궁, 뿌리, 씨앗 등을 모두 약용으로 사용했다. 오늘날의 위암 같은 반위(反胃)를 다스리고 종기, 여성 질환에도 부추 잎 혹은 부추의 여러 부분을 사용했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이다. 당시의 처방 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부추는 환자의 건강식, 치유식으로 널리 사용했다. ‘승정원일기’ 인조 24년(1646년) 5월 19일의 기록에는 중환인 중전에 대한 음식, 약물 처방 내용이 실려 있다. “술시(戌時)에 저녁 수라를 조금 올렸는데 연근채(蓮根菜)와 구채(韭菜)도 약간 올렸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연뿌리 나물과 부추 나물이다. 이틀 후인 5월 21일의 기록에도 “오늘 이른 아침에 구채죽(韭菜粥) 한 종지를 다시 올렸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부추는 궁중에서 제사에 사용하거나 죽, 반찬 등으로도 널리 사용했다. 애당초 부추를 이용한 ‘전통적인 비법 처방’이나 정력제로 사용한 흔적은 없다. 부추를 이용한 특효약(?)이 있었다 하더라도 당시의 치료법, 약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우리가 따를 만한 ‘비법’은 ‘특효약’이 아니라 음식이다. 모든 식재료를 고귀하게 사용한 그 정신이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나오는 ‘부추 꽃 김치’ 담그는 법이다.

부추 꽂지[淹韭花, 엄구화]는, 꽃과 열매가 반반인 것을 따서 억센 줄기는 버리고, 1근당 소금 3냥을 넣고 짓찧어 자기 그릇에 담아둔다. 혹 부추 꽃 속에 애오이, 애가지를 따로 소금에 절였다가 물기를 빼고 한 이틀 지난 뒤에 부추 꽃에 고루 버무려 넣되, 병 바닥에 동전을 넣으면 더욱 좋다. ‘신은지’ ‘거가필용’

‘淹(엄)’은 ‘담글 엄’이다. 애오이, 애가지는 어린 오이, 가지를 말한다. 부추 꽂지는 부추 꽃을 소금에 절여서 만든 음식이다. 오늘날의 장아찌 혹은 서양 피클과 비슷하다. 이 레시피의 원전은 ‘신은지’(神隱志, 1400~1450년경)와 ‘거가필용’(居家必用, 초판은 원나라, 개정판 1560년 출간)이다. 조선과 중국에서 부추김치뿐만 아니라 부추 꽂지도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부추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중국에 있다. 부추로 만드는 ‘스물일곱 가지 반찬’ 이야기다.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이 전남 강진 유배 시절 남긴 시에 ‘스물일곱 가지 반찬’이 남아 있다(‘다산시문집 5권 시’).

“(전략) 봄 산에 가랑비 지나가면/채소 싹이 맑은 기운 머금는데/누가 알리 ‘유랑의 부엌[廋郞廚]’에서/날마다 ‘삼구(三九) 반찬’ 장만하는 것을! (후략)”

 

중국도 부추를 널리 먹는다. 부추가 주재료인 부추만두.
중국도 부추를 널리 먹는다. 부추가 주재료인 부추만두.

부추라는 표현은 없지만, 조선 시대에 늘 인용되던 부추 이야기다.

‘유랑’은 유 씨 사내, 유 씨 성의 남정네를 이르는 존칭이다. 유랑은 남제(南齊) 시대를 살았던 청렴한 벼슬아치 유고지(庾杲之, 441~491년)다. 벼슬살이를 해도 청렴하니 늘 밥상이 부실했다. 반찬이라곤 흔하디흔한 부추뿐이었다.

“누가 유랑이 청빈하다 하던가? 반찬이 늘 스물일곱 가지나 되는 것을”이란 문구는 “남제서 유고지 열전(南齊書 庾杲之列傳)”에 나오는 내용이다.

청빈한 유고지는 평소 날부추, 삶은 부추, 부추김치 등 부추로 만든 반찬 세 가지만 밥상에 놓았다. 부추는 ‘구채(韭菜 혹은 韮菜)’다. ‘韭(구)’는 ‘九(구)’와 음이 같다. 3*9=27이다. 부추(구) 반찬 세 가지는, 곧 27가지 반찬이 된다는 표현이다.

유고지가 살았던 5세기에는 중국에서도 부추김치, 부추지를 일상적으로 먹었다.

다산은 강진 유배 시절, 부추 기르는 법에 대해서 상세히 연구했다. 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보면 다산이 농사짓는 법을 꼼꼼히 살펴보고, 실제로 부추 농사를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이 지적한 내용은 ’부추 베는 법‘이다.

“(전략) (부추 등 채소를) ‘뜯는다’라는 것은 줄기를 절단하는 것을 이른다. (부추를 한낮에 베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한낮에 부추를 자르면 칼날이 닿은 곳이 마른다. 부추를 기르는 데 해로우니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꺼릴 따름이지 먹는 사람에게 해가 있어서가 아니다. ( 후략)”_‘다산시문집’

‘먹보 영감’으로 불리는 목은 이색(1328~1396년)이 부추 이야기를 놓쳤을 리 없다. 여말선초를 살았던 목은은 시집 ‘목은시고’에서 “부추 나물은 푸르고 또 푸르며, 떡은 색깔이 노란데/조석으로 잘게 씹어 먹으니 맛이 좋다”고 했다. 목은은 ‘시경’을 인용해 “이월 초하루 이른 아침엔, 양 잡고 부추 나물로 제사한다”고 했다. 떡은 귀한 음식이었다. 귀한 떡을 부추와 더불어 먹었고 한편으로는 제사에도 사용한다고 적었다. 목은뿐만 아니라, 조선의 궁중에서도 부추를 소중하게 사용했다.

조선 초기, 국가의 제사, 민간의 각종 행사 등 절차에 대해서 기록한 서적이 ‘세종오례의’(世宗五禮儀)다. 이 기록에서도 “(제사상의) 첫째 줄에 부추김치를 놓고 무김치가 그다음이며, 둘째 줄에 미나리 김치를 놓는다”고 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김장생(1548~1631년)이 엮은 ‘사계전서’도 제사 등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봄에는 부추를 천신(薦新)하고 여름에는 보리, 가을에는 기장, 겨울에는 벼를 천신한다”. ‘천신’은 계절 별 생산물을 가장 먼저 종묘나 민간의 사당에 올리는 제사다. 봄철에는 부추가 가장 의미 있는 것이었다.

‘비 오는 날 하숙집의 정구지’ 뒷이야기를 전한다. 몇 달 후, 우연히 주인아주머니, 하숙생 몇몇과 시장을 갔다가 ‘정구지’를 만났다. “저게 정구지래요!”라고 했더니, “아! 부추” “아, 솔!”이라는 말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정구지’는 호남 사투리로 ‘솔’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래는 ‘경북매일’의 기사다.

(전략) 과메기·대게·문어·시금치 등/오늘부터 사흘간 잠실 롯데百

(중략) 포항특산품홍보 판매관은 오징어와 대게, 문어 등 동해안 수산물과 부추빵, 시금치, 부추, 젓갈, 사과, 쌀 등 포항지역 대표 농산품이 전시 판매된다. (후략)_ 2017.12.13.

‘부추’ ‘부추빵’이 눈에 띈다. 서울 생활하면서 알아차린 부분이 있다. ‘정구지 적’은 ‘정구지 90%+밀가루 쬐끔’이다. 부추전은 ‘부추 50% 이하+밀가루 50% 이상’이다. 이게 ‘정구지 찌지미’인지 밀가루 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부추빵에는 부추가 얼마나 들어 있었을까? ‘정구지’에 대한 상상력을 기대한다. 부추빵을 넘어서는, 유고지의 스물일곱 가지 반찬 같은 ‘정구지’ 음식을 기대한다. 음식 역시 상상력이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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