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포항지진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 낮 수업을 위해 이동하던 중 건물 안 계단에서 맞았던 격동과 충격. 밖으로 정신없이 빠져 나오면서 목격하였던 쏟아지는 담벼락과 혼란으로 가득했던 아우성. 다른 곳에서 겪었던 지진의 기억이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하였던 진동과 불안. 함께 겪어야 했던 학생들 걱정과 집에 두고 온 가족들 염려. 지진 이후 언론의 보도와 함께 모아진 전국적 관심. 연기되었던 수능. 무너진 아파트들과 아직도 그 곳에 서 있는 이재민 텐트들. 꽤 시간이 흘렀지만 포항지진의 충격과 그로부터의 회복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런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었다는 공식 발표는 지역의 민심을 다시 들끓게 한다. 이를 어떻게 수용하여야 하는지 또 그에 따른 해결의 가닥은 어떻게 잡을 것인지 생각들이 봇물을 이룬다.

포항지진이 ‘촉발지진’이었다는 발표를 포항의 회복과 새로운 발전 그리고 도약의 기틀로 삼아야 하며 이는 그 어느 진영논리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은 분명히 옳다. 즉, 이는 우와 좌의 문제가 절대로 아니며 포항지역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언급하는 이의 의견 가운데 은근히 어느 진영의 주장이 실리며 상대 진영에 대한 질타가 감지되는 일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포항의 위기에 대하여 걱정하면서 사심(私心)없이 수고해 온 분들도 즐비한 가운데 정치권의 힘을 배경으로 한 주장이 지역을 덮으려 하는 일도 경계하여야 한다. 선동적 외침이 적힌 가로펼침막과 누군가 준비한다는 궐기대회도 꼭 필요한 일인지 생각이 복잡하다. 까닭없이 한 편에 설 수 없는 보통 시민은 무엇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혼돈스럽기 짝이 없다.

오늘 우리의 자리를 분명히 설명하고 내일을 향한 가능한 계획이라도 누군가 조목조목 내어놓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포항이 위기를 극복해야 하며 지역의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한 자락만 붙들고 성실하게 생각하고 일하려는 이들이 없지는 않을 터에, 지역은 무슨 까닭으로 진영에 휘둘리는가. 무슨 속셈으로 함부로 편을 가르는가. 모두가 한 마음이어야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일 까닭은 없다. 다양하고 풍성한 생각과 의견들이 청취되고 조율되어 지역이 화합하고 소통하는 내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어느 한 가지 생각을 정해놓고서 그만을 따라가자는 주장도 시민에게는 피곤할 뿐이다. 모두 내어놓고 함께 지혜를 모으도록 서로 도울 수 없을까.

정적(政敵)이었던 보수진영 정치인의 장례식에 참석한 진보진영 오바마 전 대통령이 ‘우린 서로 엄청 싸웠지만 결국은 한 편임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수다한 정치적 결정과정에서 끊임없이 맞섰지만, 이루고 싶었던 일은 결국 나라와 국민이 잘 되는 일 그 한 가지였다는 고백이 아니었을까. 포항과 지역의 발전이 진정 당신의 바람이라면, 진영의 논리가 두드러지는 일은 거두어 주셨으면 한다. 지진으로 겪었던 아픔과 상처가 이념의 색깔 탓에 오히려 덧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동안 욕심 한 자락 없이 수고해 온 분들의 목소리와 의견이 더 많이 들려지도록 배려했으면 한다. 전문성과 진정성이 실린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제안들에 자리를 더 많이 내어 주어야 한다.

그간 의심하며 궁금하였던 ‘지진지역’의 오명이 씻기운 것이 참으로 반갑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제의 책임소재를 밝히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내일을 밝히는 일과 뒤섞이면 그도 어지럽다.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여는 일은 지역의 손에 달려있다. 지역의 역량을 조화롭게 모아내어 포항이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포항,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