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명 자

이십여 년 훌쩍 저쪽 사람이다

뚝 끊어진 근황에

구설수가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이미 저승길 가고 있는 사람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문상만 하고 올까,

그간 뭘 하며 살았는지

죽은 뒤의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애잔한 맘은 줄어들고 부담만 늘어가는데

대학병원 장례식장 담벼락에 늙은 흰

동백 한 그루

내 맘 읽기라도 한 듯 물끄러미 바라본다

소복 입은 여자들, 햇볕 쬐러 나왔는지

흰동백꽃처럼 창백한 얼굴로 서성인다

아침햇살에 차츰차츰 화석되어가는

기억들

바람에 떨어져 날리는 흰동백꽃잎 따라간다

아침햇살도 소복 입은 여자들도

제 갈 길로 가버리고

장례식장 가는 길은 저승길보다 멀어진다

시인은 연락이 끊긴 지 20년이나 된 어떤 지인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길이다. 담벼락에 핀 흰동백꽃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에 잠기고 있다. 인생이란 모두가 죽음을 향해가고 있고 날마다 생명의 양이 줄어가는 운명적인 존재다. 죽음이라는 보편적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담담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