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 패리시 러브조이(1802-1837). 미국 미주리 주에 사는 평범한 성직자입니다. 어느 날 흑인이 정당한 재판 절차도 없이 길거리에서 무참하게 처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러브조이는 어떻게 이 끔찍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지요. 언어의 힘을 믿는 그는 신문을 창간합니다. 칼럼을 통해 노예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만인은 평등하다는 진리를 외칩니다.

노예 해방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이 신문사로 몰려가 협박을 일삼습니다. 러브조이는 묵묵히 칼럼을 쓰고 신문을 발행하지요. 시민들은 폭도로 변합니다. 인쇄기를 쇠몽둥이로 부순 후 강물에 던져버리고 신문이 쌓여 있던 창고에 불을 질러버리지요. 결국 자신들의 뜻에 굴복하지 않는 러브조이를 살해합니다. 사건에 연루된 그 누구도 기소 당하거나 처벌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인자 중 한 사람을 그 도시 앨턴 시장으로 선출합니다. 정의를 위한 러브조이의 위대한 도전은 무참한 실패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그로부터 23년 후, 미국은 아브라함 링컨을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스프링필드에서 활동하던 링컨은 과거 노예 해방을 부르짖던 엘리자 패리시 러브조이 칼럼의 열혈 팬이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링컨 가슴에는 정의감이 불타오릅니다. 그 마음 한 켠에 심겨진 언어의 씨앗은 23년 동안 줄기가 자라고 잎이 무성하며 마침내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러브조이의 의로운 죽음에 대해 연설하면서 이런 표현을 남기지요. “영웅이란 보통 사람보다 더 용감한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보다 5분 더 길게 용감할 뿐이다.” 러브조이, 아브라함 링컨 모두가 우리의 영웅으로 부족함이 없는 분들입니다. 그들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결코 변할 것 같지 않던 세상을 변화시키고 말았습니다. 그 뿌리에는 ‘용기’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노예는 과연 누구일까요? 완벽한 자유가 보장된 것처럼 보이는 21세기. 쇠사슬에 묶인 현대판 노예는 누구이며 이 노예를 해방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질문해 봅니다. 폭도들에게 둘러 싸인 러브조이의 공포를 생각해 봅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살인자들의 광기에 포위당한 그는 두려움과 절망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직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 러브조이는 5분 더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의미겠지요.

“5초만 더 용감해지기”. 오늘 저의 결심입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심호흡 한 번 길게하고 5초만 더 용감해지고 싶습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