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미 양쪽에서 냉담한 반응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북측 인원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키는 새로운 변수가 발생했다.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지난해 9월 개소한 남북연락사무소는 그동안 주 1회 소장 회의를 열었으나 이달 들어서는 북측의 불응으로 회의가 연 4주째 무산돼, 이상기류를 보여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의 대북정책은 하루속히 정비돼야 한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남측 소장을 맡고 있는 천해성 통일부 차관에 따르면 북측은 22일 오전 9시 15분쯤 연락사무소 연락대표 접촉을 요청해 철수 방침을 알린 다음 철수하면서 “남측 사무소의 잔류를 상관하지 않겠다. 실무적 문제는 차후에 통지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노이 제2차 북미회담이 결렬된 이후 우리의 대북정책은 일대 혼란에 빠져든 상태다. 미국 재무부는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혐의로 중국 해운회사 2곳을 새로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는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에 분명히 선을 긋고, 중국에 대해선 제재 전선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 재무부가 북한산 석탄을 수출했거나 북한과의 불법 환적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선박 95척의 리스트를 갱신하면서 한국 국적의 선박도 포함한 사실이다. 이 리스트에 올랐다고 해서 당장 제재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잠재적 블랙리스트라고 볼 수 있다. 대북제재에 이견을 보이는 한국 정부를 겨냥해 옐로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트위터를 통해 북한에 대한 기존 제재에 더해 대규모 제재가 추가될 것이라는 재무부 발표에 대해 “철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화의 끈을 다 놓지 않으면서 유리한 국면을 유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제스처가 나온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운(戰雲)을 확실하게 걷어내려는 일념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양쪽에 대해 과장된 중재자 역할을 했는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나타난 현상으로 봐서는 미국도 문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서 흔쾌하지 못하고, 북한도 일정 부분 삐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럴 때일수록 위기상황의 당사자로서 대한민국의 정책은 냉정해야 한다.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해보면, 역시 김정은은 아직 ‘북한의 비핵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나 국제정서를 제대로 알리고 미국의 입장을 과장되지 않도록 정직하게 설명하고 진지하게 설득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평화’에 대한 낭만적 환상은 일시적으로 행복하게 해줄지 모르지만, 영원한 안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