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북한은 지금 ‘핵보유국’인가, 아닌가.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최근 “올 2월 기준으로 북한은 20~3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3월 추산치인 ‘핵탄두 10~20개 보유’에서 10개 나 늘어난 것이다. 주일미군사령부(USFJ)도 지난해 말 공개한 자체 제작 동영상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15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금 핵보유국인가, 아닌가.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세계가 북한을 ‘실질적 핵보유국’이라고 인정하고 있는데, 대한민국만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이 굳이 공식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은 단지 핵 도미노 현상을 우려한 것이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핵무장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장해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의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워낙 예측 불가능한 집단이니 달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막무가내 어린아이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칼을 들고, 총을 들고, 나아가 핵미사일을 내세워 협박을 일삼는 무리에게 일방적 평화놀음이 무슨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 핏줄, 한 동포’라는 낭만적인 접근은 저들의 전술 전략에 딱 맞아떨어지는 먹잇감이다. 우리는 지금 평화로운가, 아니면 그냥 평화를 갈망하다 못해 정신줄을 놓은 것인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체 핵무장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이제 핵무장을 검토할 때’라는 이름의 정책토론회에 보낸 서면 축사에서 “자체 핵무장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폭넓은 국민 여론 수렴이 필요함과 동시에 국제사회와도 함께 고민하면서 풀어가야 할 과제”라며 “(자체 핵무장은)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무조건 접어놓을 수만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달 전당대회 과정에서 오세훈 후보는 “전술핵 재배치를 뛰어넘어 핵 개발에 대한 실증적 논의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4일 한국당 조경태 최고위원은 “북한이 핵 포기 의사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문재인 대통령은 자체 핵 개발이나 전술핵 주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문제는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시각이 여전히 정파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황 대표가 사실상 불가능한 핵무장론으로 보수층에 구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당은 당 대표까지 나서 핵무장으로 한반도와 동북아를 화약고로 만들겠다는 무지막지한 생각을 보여줬다”며 “표만 얻을 수 있다면 악마와도 손잡겠다는 수구냉전세력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임진왜란 10년 전 병조판서로 있던 율곡 이이가 일본과의 전쟁을 예상하고 10만 대군 양병을 주장했다는 설이 있다. 당파에 눈이 멀었던 주류 서인들이 공연히 전쟁위험을 조장한다고 반대해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다는 내용이다. 율곡의 10만 양병설이 실재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소중한 교훈을 남긴다. 군사적 대비에 필요한 비용은 전쟁으로 겪게 되는 막대한 참화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점이다.

비대칭 전략자산의 차원에서 보면, 한반도는 이미 균형추가 기울었다.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면서 ‘미군 철수’를 부르대는 사람들이 ‘핵무장’은 절대 말하지 않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태영호 전 북한영사의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남북의 ‘핵 균형’ 말고는 답이 없다. 다시 묻는다. 북한은 핵보유국인가, 아닌가. 다 알면서 지금 스스로를 속이고 평화놀음에 취한 자들은 대체 무슨 속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