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경북의 멋과 맛을 찾아서
⑩ 비빔밥은 멀티미디어 음식이다

전주비빔밥. 고명으로 육회, 볶은 쇠고기 등이 올라 있다. 화려하다.

비빔밥을 적확하게 표현한 이는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 선생이다. “비빔밥은 2개 이상의 문화가 같은 공간에서 충돌,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중략) 실제로 나는 서로 섞일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것들을 비빔밥처럼 버무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걸 즐겼지. 쉬운 예로 서울 아시안게임을 위해 만든 ‘바이 바이 키플링’을 볼까. 서양 연주가가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 일본 마라톤 선수가 결승 테이프를 끊는 장면, 서양의 타악기 연주와 한국의 사물놀이 연주가 함께 울려 퍼지는 장면. 그야말로 동양과 서양, 테크놀로지와 인간성,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온갖 요소를 뒤범벅으로 섞은 ‘비빔밥 정신’이 담겨 있지. 자네 작업도 보니 영락없이 비빔밥 같더군. (후략)”

우리는 비빔밥을 모른다. 어느 항공사 고객들이 첫째로 손꼽는 기내식. 혹은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 왔을 때 몇 차례나 주문해서 먹었던 음식 정도로 기억한다.

쌀을 먹는 나라는 많다. 비빔밥을 먹는 나라는 없다. 비빔밥은 한반도 고유의 것이다. 일본에는 여러 종류의 덮밥과 가마메시[釜飯, 부반]가 있다. 비슷하지만 우리 비빔밥과 다르다.

덮밥은 말 그대로 밥 위에 여러 가지 고명을 얹어서 먹는다. 고명을 덮은 음식이지 비빔밥처럼 ‘비비다’에 방점이 있지 않다.

가마메시는 솥밥이다. 비벼 먹는 것이 아니라 양념을 얹어서 떠먹는다. 가마메시를 비비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일본인들도 비빔밥을 모른다. 그들 눈에는 비빔밥이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음식이다. 양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 뉴욕에 비빔밥 광고 사진이 걸렸을 때 일본 언론인 구로다 가쓰히로[<9ED2>田勝弘, 1941년~ ]는 말했다.

“아름답게 준비한 다음 왜 모든 걸 뒤섞어서 엉망을 만들까?” 구로다 씨의 한국 인연은 약 40년이다. 일본 우익이지만 ‘한국을 아는’ 지한파다. 그도 비빔밥은 모른다.

비빔밥은 밥, 고명, 장(醬)이 한 그릇에 뒤섞여 새로운 제3의 맛을 창조해내는 음식이다. 백남준 선생이 비빔밥, 멀티미디어를 이야기한 것은 1993년이었다. 25년 전에 비빔밥 정신을 말했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통합’이 비빔밥의 ‘섞임’과 같다고 표현했다.

백남준은 동서양 문화의 충돌, 융합을 나타내는 자신의 예술 세계가 “비빔밥의 원리와 같다”고 표현했다. 파리 8대학에서 ‘백남준 비디오론’을 강의했던 평론가 장 폴 파르지에(J. P. Fargier)도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비빔밥처럼 충돌, 융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각 다른 문화들이 뒤섞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힘은 ‘예술적 상상력’이다. 새로운 맛을 만드는 힘은 비빔밥의 ‘장(醬)’이다. 비빔밥의 ‘섞임’과 ‘비빔’은 “두 가지 이상의 식재료가 융합하여 제3의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헛제사밥 한상차림.
헛제사밥 한상차림.

◇ ‘시의전서(是議全書)’의 비빔밥

‘골동반(骨董飯)’이 곧 ‘부븸밥’ 즉, 비빔밥이라고 처음 표기한 책이 ‘시의전서’다. 몇몇 조건이 붙는다.

“지금까지 발견된 책 중에는”이란 전제가 있다. ‘시의전서’는 19세기 말에 간행되었다고 추정한다. 필자, 연대가 모두 불확실하다. 20세기 초반에 경북 상주에서 발견되었다. 내용 등을 볼 때 1900년 가까운 시점에 간행되었으리라 추정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이다. 조선왕조의 끝자락에 발간된 책이다. 오래된 ‘고조리서(古調理書)’라고 부르기엔 어색하다. ‘부븸밥’으로 표기한 책이 ‘시의전서’이지 ‘시의전서’가 비빔밥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은 아니다. 비빔밥 레시피도 지나치게 화려하다.

“밥을 정성들여 짓는다. 고기는 재워서 볶고 간납[간전肝煎]을 부쳐서 썬다. 각색(여러 종류)나물을 볶아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놓는다. 밥에 만든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계란지단을 붙여서 골패 짝만큼씩 썰어 얹는다. 고기완자는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 국을 쓴다.”

고기, 간납, 구슬처럼 빚은 고기완자와 달걀도 여러 번 등장한다. 아무리 봐도 한식과는 거리가 있다. 나물을 볶는 부분이나 지나친 고기, 달걀 사용 등은 한식이 아니라 서양식 혹은 일본식이다. 재료나 조리법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복잡하다.

비빔밥은 ‘시의전서’ 이전에도 있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19세기 중반에 나왔다. 여러 종류의 비빔밥이 등장한다.

 

90년 업력의 울산 함양집. 전복과 계란지단 등이 특이하다.
90년 업력의 울산 함양집. 전복과 계란지단 등이 특이하다.

“비빔밥, 채소비빔밥, 평양 것을 으뜸으로 친다. 다른 비빔밥으로는 갈치, 준치, 숭어 등에 겨자 장을 넣은 비빔밥, 구운 전어새끼를 넣은 비빔밥, 큰새우 말린 것, 작은 새우, 쌀새우를 넣은 비빔밥, 황주(황해도)의 작은 새우 젓갈 비빔밥, 새우 알 비빔밥, 게장비빔밥, 달래비빔밥, 생 호과비빔밥, 기름 발라 구운 김 가루 비빔밥, 미초장비빔밥, 볶은 콩 비빔밥 등이 있다. 사람들 모두 좋아하고 진미로 여긴다.”

50년 후에 나온 ‘시의전서’보다 간결하다.

비빔밥 종류도 다양하다. 조리 과정이 복잡하거나 식재료가 화려한 것은 없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비빔밥이 살갑게 다가온다. 그 훨씬 전에도 비빔밥은 있었다. 조선중기 문신 박동량(1569~1635년)이 쓴 ‘기재잡기’의 내용이다.

“(전략) 곧 밥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 세상에서 말하는 비빔밥[混沌飯, 혼돈반]과 같이 만들고 술 세 병들이나 되는 한 잔을 대접하니, 전임이 두어 숟갈에 그 밥을 다 먹어 치우고 단숨에 그 술을 들이켰다. (후략)”

엄청난 양의 ‘밥=혼돈반’을 먹어 치운 주인공은 조선 전기의 무관 전임(田霖 ?~1509년)이다.

전임은 밥에 생선과 채소를 섞어 만든 것을 먹었다. ‘混沌飯(혼돈반)=비빔밥’이다. ‘혼돈’은 뒤섞여 어지러운 상태다. 혼란, ‘골동’과도 비슷하다.

‘혼돈반’이란 표현은 박동량과 ‘기재잡기’의 시대인 17세기 초반에 사용했다. 전임의 시대는 그보다 앞선 세조 시절이다. ‘기재잡기’의 기록이 맞는다면, 비빔밥은 15세기에도 있었다. ‘시의전서’의 기록보다 400년이 앞선다. 비빔밥은 오래 전부터 한반도에 있었다.

 

헛제사밥에 나온 나물 반찬. 미 리 큰 그릇을 내놓는다. 비빔용이다.
헛제사밥에 나온 나물 반찬. 미 리 큰 그릇을 내놓는다. 비빔용이다.

◇ 헛제사밥과 비빔밥

오밤중이었다. 졸린 눈을 부비며 잠을 참고 또 참았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당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집안 제사에 다녀오셨다. 손에는 신문지와 한지로 싼 제사음식이 들려 있었다.

염불보다 잿밥. 제사음식이 궁금했다. 지금도 어느 집, 누구 제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한 달에 한두 차례 있었던 일이다.

참 미안하게도 어느 집 제사인지 알아볼 염량도 없었다. 비빔용 큰 그릇과 간장 종지가 마련되었다. 집에 있던 식은 밥에 나물을 넣고 간장을 얹은 다음 비볐다. 여러 가지 전 쪼가리와 생선 등은 좋은 반찬이 되었다. 주전자에 담아온 탕(곰국)은 국물이다. 어린 동생들을 제외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제사 나물 비빔밥을 먹었다. 그게 비빔밥이자 ‘헛제사밥’임을 그때는 몰랐다.

헛제사밥은, 공부하던 유생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음식은 법도다. 향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헛제사를 핑계로 상을 차렸다? 유교, 선비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민간에 ‘헛제사밥’이 있었다면 1670년 무렵 발간된 ‘음식디미방’에 헛제사밥이 있어야 한다. 없다. 조선후기 ‘오주연문장전산고’ ‘동국세시기’ ‘시의전서’에도 없다.

‘헛제사밥’은 일제강점기, 해방 후에 나타난 음식이다. 유교, 오래 전 향교문화, 선비가 모두 사라진 후에 나타났다. 제사도 없는데 화려하게 차려서 슬쩍 먹었다? 그게 헛제사밥이다? 비루하고 천박하다.

제사 모시는 일은 당시에도 버거웠다. 제사 닮은 음식을 일상에서 만들어 먹는다? 불가능하다.

필자 기억에는 모든 제사 음식은 비벼먹는, 비빔밥이었다. 지금의 헛제사밥은 식당, 고객들이 합작한 이름이다.

‘음식디미방’의 ‘잡채’ 중 몇 가지를 추려서 밥을 더하고 간장으로 비비면 비빔밥이다. 제사상의 오색 나물은 잡채의 부분집합이다. 잡채, 비빔밥, 헛제사밥은 맞물려 있다.

“(전략) 허기가 들면 탕과 숙채(熟菜, 익힌 채소), 배추전과 간 고등어, 상어 ‘돔베기’ 산적으로 상을 차려낸 헛제사밥과 안동식혜를 먹으며 우리 조상의 지혜가 깃든 안동의 맛에 감탄한다. 한 도시, 한 나라의 문화를 말할 때 음식만큼 좋은 소재는 없다. (후략)”

-경북매일 2017년 2월27일, 윤희정 기자

헛제사밥은 우리 시대의 음식이다. 특징이 있다. 육회, 고추장이 없다. 전통 간장을 사용한다. 조미료, 감미료 사용을 절제한다. 건강식이다. 생채 대신 숙채다. 음식의 뿌리는 ‘고조리서’다. 홍보, 마케팅은 특장점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지자체의 분발을 기대한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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