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세계적인 관심사 하노이 북미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세기의 담판은 빅딜도 스몰딜도 아닌 노딜(no deal)로 끝나고 만 것이다. 김정은은 그의 부친 김정일과 달리 언론 노출을 기피하기 보단 즐겨하는 편이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회담에 이은 이번 하노이에서의 그의 노출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조부 김일성의 인민복과 같은 옷을 입고 베트남의 하노이를 방문했다. 그는 중국을 종단하여 하노이까지의 당 간부와 수행단을 이끌고 66시간, 2박3일을 열차로 이동하는 장정(長程)이었다. 하노이 북미 회담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가 보인 몇 개의 정치 행태에 관한 함의를 분석해 본다. 트럼프와 첫 만남 시의 김정은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매우 초조해 보였다. 싱가포르에서의 첫 상견례시보다 그는 불안하고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2천500만 조선인민의 수령인 그의 태도는 약간 겁먹은 표정이었으며 자연스럽지 않는 웃음을 짓기도 하였다. 돌이켜 보니 그는 톱다운(top down)식의 정상회담에 앞선 미팅에서 트럼프에게 모험적인 배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변 핵시설 정도만 폐기하면 미국이 대북제재를 풀 수 있다고 오판한 결과이다.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둔 트럼프를 북한식 ‘벼랑 끝 전술’로 밀어붙여 결판을 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협상과 계산에 빠른 노련한 트럼프는 이를 덜컥 수용할 수 없었다. 영변시설 외의 플러스알파를 요구했던 것이다. 김정은의 초기의 불안했던 표정을 이해하는 포인트이다.

김정은은 열차 이동 중 간이역에 내려 담배 피우는 장면이 노출되었다. 애연가 김정은이 담배를 피우고 여동생 김여정이 재떨이를 받치는 모습이다. 중국 당국의 철통보안을 뚫고 끈질긴 일본 사진 기자가 포착한 특이 장면이다. 머리가 흐트러진 김정은이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고, 동생이 재떨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의 독특한 측근 정치의 실상이 노출되는 순간이다. 20대 후반의 김정은이 북한의 노령 간부들 앞에서도 수시로 담배를 피운 것은 수령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행태일 것이다. 고도 비만인 김정은은 의료진의 권고도 무시하고 술과 담배를 즐긴다. 이를 제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북한 정치체제의 불행이며 한계이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후 두문불출하던 김정은이 하노이 주재 북한 대사관을 방문한다. 대사관 정문에서부터 수령 김정은을 맞이하는 베트남주재 북한 대사는 흥분된 표정으로 자신을 큰 소리로 소개한다. 북한 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들의 환영 열기는 그야말로 열렬하였다.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던 지도자 동지를 직접 맞으면서 울부짖는 여성 모습까지 보였다. 똑같은 장면이 그의 귀환길 새벽 3시 평양역에서도 연출되었다. 역두에는 90대 고령인 김영남, 당 서열 2위인 최용해 모습도 보였다. 당과 군의 간부들이 도열하여 협상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수령을 환영하는 장면이다. 북한식 일인 통치, 수령 통치의 진면목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김정은은 벌써 집권 8년차를 맞고 있다. 2011년 갑작스런 부친의 사망으로 승계된 그의 리더십은 흔들림 없이 집행되고 있다. 세습왕조체제 하의 30대 통치권자 김정은의 정치 행태도 이제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그는 작년 평양회담 시 문재인 대통령과 카퍼레이드를 하고 운동장에 운집한 평양 시민들을 향해 대중 연설도 하였다. 그는 집무실에서는 올해 서양식 신년사도 발표하였다. 그는 베이징, 싱가포르, 하노이 방문 등 선대의 ‘은둔의 정치’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경직된 정치 체제는 변하지 않아도 그의 정치 행태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북한 최고 통치자의 이러한 작은 변모가 북한 개혁 개방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정은의 정치 행태는 아직도 정상국가의 지도자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