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뇌물·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 원 등의 중형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보석으로 풀려나자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아마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보석을 통해 풀려난 사례가 처음인 데다 15년형이란 중형을 선고받은 피의자에게 보석결정이 내려진 것 자체도 이례적이기 때문일게다.

전직 대통령에게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의식한 듯 재판부는 보석에 엄격한 조건을 붙여 허가했다.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접견은 변호인과 배우자, 직계 혈족들에게만 허용하고, 통신도 엄격히 제한했다. 사실상 ‘자택구금’상태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불구속 재판 원칙에 부합하는 보석 제도가 국민의 눈에는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자택 구금에 상당하는 엄격한 조건을 붙인 것”이라면서 “구속 만기가 다가오는 점에서 보석을 할 타당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구속 만기일에 선고한다고 가정해도 고작 43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며 “심리하지 못한 증인 수를 감안하면 만기일까지 충실한 심리를 끝내고 선고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즉, 구속 만료 후 석방되면 자유로운 불구속 상태에서 주거 제한이나 접촉 제한을 고려할 수 없어 오히려 증거 인멸의 염려가 높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금 보석을 허가하면 조건부로 임시 석방해 구속영장의 효력이 유지되고, 조건을 어기면 언제든 다시 구치소에 구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항소심 판결 선고가 나올 때까지 이 전 대통령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어쨌든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이 허용되자 구속수감중인 박 전 대통령도 MB처럼 풀려날 수 없을까라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결론은 불가능하다. 왜냐 하면 현행법상 보석은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에 대한 구속집행정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불법 공천 개입 사건으로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돼 이 전 대통령처럼 보석 석방이 될 가능성은 없다. 박 전 대통령은 현재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5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아직 항소심 판단을 받지 않았다. 더구나 검찰은 지난 2018년 9월 박 전 대통령의 1심 구속기간 만료(10월 16일)를 앞두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받은 70억 원과 최태원 SK 회장에게 89억 원을 요구한 혐의에 대해 수사하기 위해 추가 구속 영장을 요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은 오는 2019년 4월 16일이면 끝나지만 구속기간이 만료돼도 풀려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징역 형이 집행된다.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되려면 형집행정지나 사면이 확정돼야 한다. 다만 사면이나 형집행정지의 경우도 형이 확정된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박 전 대통령은 재판에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사면이나 형집행정지 대상에도 들지 않는다.

이 전 대통령 이외에 구속된 전직 대통령은 세 명이다. 군사 쿠데타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1997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두환 씨와, 같은 혐의로 17년형이 확정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구속된 이후 수감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 얘기를 하다보면 이 나라의 정치풍토가 부끄럽다.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4명 모두 쿠데타나 권력형 비리, 국정농단 등의 이유로 감방생활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수반이다. 그런 대통령들이 재임후 모두 감방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매번 겪어야 했던 국민들의 심경은 마냥 참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