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인도 델리에 있는 인도공대(IIT) 델리 캠퍼스를 가본적이 있다. 시설은 한국대학에 못미치지만 엘리트 의식이 가득한 캠퍼스였다. 조금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인도 학생들 사이에는 “MIT 붙고 IIT 떨어졌다”는 말이 공공연하다고 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15%, IBM 엔지니어의 28%, NASA 직원의 35%, 미국의 의사 15%를 IIT 출신이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IIT는 인도의 독립 직후, 인도의 과학 발전을 위해 설립한 명문 국립 공과대학이다. 인도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네루 수상이 설립을 주도했다. 지금은 카라푸르, 뭄바이, 델리, 하이데라바드 등 16개 캠퍼스가 있는데 10개는 2004년 이후에 세워질 정도로 IIT의 인기는 급상승하고 있다. 인도 전체에서 30만명이 시험을 봐서 5천명 정도 선발한다고 하니 그 치열한 경쟁을 알만하다. 인도 대학 순위를 보면 어디서 조사하든 1위에서 20위 사이에 16개의 캠퍼스가 전부 들어간다. 전통적인 명문 델리 대학, 네루 대학, 그리고 인도과학연구원을 제외하고는 IIT 가 모두 장악하고 있다. IIT에 대한 인도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IIT출신자들의 졸업 후 행보를 보면 세계 유수의 IT기업에서 IIT 졸업생을 바로 채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IIT의 힘은 “1+1 은 2보다 더 크다”는 시너지 효과에 기인한다. 각 캠퍼스의 우열의 차이는 있지만 정부의 통합관리로 자원의 효율적 사용이 가능하고 캠퍼스별 차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각 캠퍼스는 특성화를 앞세우지만 인재 유치를 위해 경쟁력에 힘을 기울인다. 한국에도 IIT 같은 정부의 특성화 공대가 여러개 있다. 최근 국공립 4개 과기원인 카이스트(대전)·지스트(광주)·유니스트(울산)·디지스트(대구)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한다고 한다. 우선은 ‘공동 사무국’을 만들어 운영하지만 이후 이사회를 통합해 ‘하나의 대학’으로 만드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4개 과기원을 운영하는 ‘공동 사무국’을 카이스트 캠퍼스에 세울 계획”이라며 “이르면 3월, 늦어도 올 상반기 사무국 문을 연다”고 했다.

늦은감이 있지만 잘 한 결정이라고 본다. 그동안 4개 과기원은 연구시설 공유, 중복 연구 조정, 과기원별 중점 연구 분야 결정 등에 있어서 충분한 조율이 되지 못하였다. 비슷한 목적으로 세워진 과기원들이 여러 곳 생기면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비슷한 연구가 중복되는 등의 문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과기원의 역할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인도의 IIT 같은 형태로 전환하여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캠퍼스별 특화를 꾀하면서도 캠퍼스간 경쟁은 지속되는 형태를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 과기원은 카이스트(1971). 지스트(1995), 디지스트(2004, 학사는 2014), 유니스트(2009) 등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이들은 통칭 ‘IST (과기원) 형제’라고 부른다. 모두 ‘한국의 MIT’를 표방하며 개원했지만 학교별로 이사회가 다르고 정부 예산도 별도로 받아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현재 검토 중인 방안은 4개 과학원을 통합해 ‘하나의 대학’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디지스트는 ‘카이스트 대구경북캠퍼스’가 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대학 평가에서도 캠퍼스 별로 랭크가 되겠지만 통합적인 개념 때문에 4개 캠퍼스 모두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4개 캠퍼스가 통합된 KAIST와 사립 특성화 이공계 대학인 포스텍은 상호 협력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더 얻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IIT 계열이 아닌 인도과학연구원(IIS)이 IIT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1,2위를 다투는 것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