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고전 토론 모습을 보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굳어 있는 두뇌를 어렵게 도끼질을 해 가며 고전을 읽는 어른과는 사뭇 다른 천재적인 발상들을 척척 내 놓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중2 정도 되면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습니다. 학원 순례길에 나서는 거죠. 슬픈 작별을 경험합니다.

미국 매릴랜드주에는 1696년 세워진 아담하지만 유서 깊은 세인트 존스 대학이 있습니다. 학생 수 600명 밖에 되지 않는 전형적인 리버럴 아츠 칼리지입니다. 대공황을 겪으며 존폐 위기에 놓일 때 혁신적인 고전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합니다. “고전 수업은 강의도 없고 시험도 없어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로 시작해서 루소, 로크, 헤겔, 마르크스 저작까지 4년 간 100권을 읽고 토론합니다. 수업 시간에 말하지 않는 학생들은 배울 의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학교를 떠나야 합니다.”

세인트 존스를 졸업한 조한별 씨 이야기입니다. 이 학교 출신은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 콜럼비아 등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생보다 뛰어난 성적으로 주류 대학원에 진출합니다. 어린 시절 경험하는 고전 토론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길러주는지 알 수 있지요.

외교부 산하 국제교육교류협회(IEEA)는 외교관 출신 이사장이 세운 단체입니다. 그는 2000년대 초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시작으로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합니다. 협회가 선발한 청소년들이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면 명문 주립대에서 조건없이 입학을 허가한다는 협약을 맺습니다. 토플로 선발한 학생들보다 훨씬 정착률이 높고 인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순식간에 22개 명문 주립대로 이 제도가 확대되지요. 뉴욕주립대, 메인주립대, 유타주립대, 필라델피아에 있는 명문 템플대학 등이 포함되어 있지요.

지방은 유일하게 포항에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세인트존스 대학처럼 고전 읽고 토론하며 글쓰는 배움의 방식을 경험한 학생들에게 미 명문 주립대가 입학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겁니다. 고전으로 가득한 클래식북스에 다시금 아이들의 토론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지기를 기대합니다.

어제 소개한 레이 커즈와일은 시각 장애인을 위해 독서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용기있는 한 외교관은 아이들이 입시에서 벗어나 마음껏 책읽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 상식을 깨는 협상력을 발휘했습니다. 지옥을 받아들이지 않고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가려 애쓰는 그대와 더불어 용기를 내는 새벽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