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문화가 가장 잘 활성화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기부문화가 잘 발달하게 된 배경으로는 기부금 운영의 투명성과 세제 혜택, 사회적 분위기 등을 손꼽는다. 미국 비영리 기부단체에 기부된 돈만 약 462조 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1년 예산보다도 많은 돈이다.

키다리 아저씨는 1912년 진 웹스터가 발표한 소설의 제목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주디가 자신의 후원자 뒷모습 그림자를 보고 붙인 별명이다. 여기서 연유해 얼굴 없는 후원자를 우리는 키다리 아저씨라 부른다.

대구에도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 작년 12월 24일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대구공동모금회 직원을 찾아 1달에 1천만 원씩 12달 모은 돈을 전달했다. 2012년부터 누구인지 알리기를 거부하며 매년 그가 전달한 돈이 벌써 9억6천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의 기부 정성이 너무나 놀랍다. 기부를 하는 동기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기부를 통해 전달한 그들의 마음은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하며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청청하게 한다. 기부가 숭고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기부의 참뜻을 잘 살려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은퇴 소방관의 기부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자신과 같이 소방관의 길을 걸었던 아들이 뜻하지 않는 사고로 순직하자 그는 자신과 아들의 이름으로 모금회에 2억 원을 기부했다. 순직한 아들을 기리고 아들에게 보여준 우리 사회에 대한 감사의 뜻이라 했다.

기부는 받는 사람에게 크나큰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기부를 하는 사람에게도 희망의 빛이 된다. 90세의 어느 기업가가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에 500억 원을 쾌척했다고 한다. 세계 유수대학이 인공지능(AI) 개발에 열을 올리는데 서울대가 뒤처져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라 했다. 모교에 대한 그의 애정이 유난히 돋보이는 선행이라 잔잔한 감동이 와 닿는다. 기부자의 뜻에 따라 공학도 후배들이 한국을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국가로 끌어 올리는 성과를 냈으면 한다. 그것이 90세 노련한 기부자의 꿈을 이루는 일이다. 각박한 세상에 기부천사들이 주는 작은 감동은 우리 사회를 버티게 하는 힘이자 희망이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