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제일경은 호수들이다. 하노이는 한자로‘河內’라고 쓴단다. 두 강 사이에 끼어 있는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한다. 막상 하노이는 강보다 크고 작은 호수의 도시다. 물웅덩이가 자그마치 삼백 개나 된다나.

여기 상사에서 십 년 넘게 일하고 있다는 어느 분에게 호수들이 물은 깨끗한가 물었다. 수질 관리가 어느 정도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만약 호수들이 오염되어 있다면 하노이는 물 썩은 내를 풍길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워낙 자외선이 뜨거워 물이 자연 정화되는 것 같다고도 한다.

지금 여기 시간 아침 7시 반. 42층 호텔 벽면 유리창으로, 나는 지금 그 가운데 하나인 ‘서호’(호 떠이)를 내려다 보고 있다. 안개에 감싸인 하노이의 아침은 아름답다. 높은 건물들이 몇 년 전보다 많이 늘어났지만 하노이는 여전히 붉은 지붕을 가진 높지 않은 집들이 빼곡하다. 서울과는 달라서 산 하나, 언덕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평평한 도시에 크고 작은 집들과 큰 호수가 함께 어우러졌다.

하노이 제이경은 복숭아나무 꽃이다. 홍매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복숭아나무 꽃이라 한다. 사원마다 건물마다 모셔놓은 복숭아나무 분재들에 겨울에 피어난 붉은 빛 꽃송이들이 사람이 시선을 강탈한다.

하노이 문묘라는 곳에 가서도 오른쪽에는 금귤나무 분재를, 왼쪽에는 복숭아나무 분재를 세워 놓은 것을 보고 감탄을 했는데 겨울의 하노이에는 이 붉은 복숭아나무 꽃이 없는 데가 없단다.

그럼 하노이 제삼경은 무엇이냐, 하면 작디작은 의자들이다.

벌써 다섯 번은 온 것 같은 베트남에 가장 먼저 갔던 곳은 호치민, 그러니까 옛날의 사이공, 거기 가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베트남어를 적는 알파벳, 남국의 빛깔을 띤 건물 외벽들, 그리고 또 하나가 그 작디작은 의자들이었다. 이제 하노이에 오자 알파벳의 충격은 가셨고 호치민보다는 한결 색조 부드러운데, 유독히 눈에 도드라져 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작디작은 의자다.

단체로 따라다니는 여행은 하루만 지나도 버겁다. 어느 사원 문 앞에서 나는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혼자 청계천, 을지로 ‘마찌꼬바’ 풍경 같은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호수가 있고 물고기를 잡은 청년이 있고 초등학교도 있는 곳에서 한 번 꺽어 들자 한 없이 펼쳐진 자그마한 제작소들. 자칫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단체 여행에 혼자 길을 잃는 건 ‘범죄’에 가깝다. 더 들어가기를 망설이고 되돌아선 길에 작디작은 의자들이 보인다.

이 의자들은 차나 커피 같은 음료를 파는 아주머니가 내놓았고 남녀 한 쌍이 아이스 커피를 의자만큼 작은 탁자 앞에 놓고 나란히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나도 무턱대고 그 작디작은 의자 하나에 앉아버린다. 따뜻한 베트남 차가 부드럽고도 강하다.

나는 그 작디작은 의자에 앉아 세상 풍경을 구경한다. 평화롭다.

어떻게 해서 이 베트남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의자를 발명한 것일까.

큰 엉덩이는 앉기가 황송할 것 같은 이 앙증맞은 의자가 작게 보고 작게 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한낮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