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는 존 테일러 게토라는 교사가 쓴 도발적인 책 제목입니다. 게토는 30년 넘게 뉴욕 공립학교에서 우수 교사 표창을 받은 모범 교사로서 어떻게 공교육이 아이들의 가능성을 침해하고 말살하는지 고발합니다. “학교에서 측정하는 것은 유순함이고, 측정은 상당히 정확하게 이뤄집니다. 학교 존재 목적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통제를 위해 묵묵히 따라오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패배한 프러시아는 어떻게 하면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국민들을 어릴 적부터 한 곳에 모아 철저하게 반복해 훈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말 잘 듣고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고분고분한 국민을 육성하는 것. 효율적인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길러내는 것이 공립 학교를 세운 프러시아의 당초 목표였습니다. 영국은 즉각 프러시아 공교육에 열광했고 미국은 교육학자들을 대거 프러시아에 유학 보내 공교육 시스템을 베껴옵니다.

미국에서 가정과 공동체의 주체적 교육 이념은 묵살당했고 마치 군대에 끌려가듯 학교에 징집 당해 강제로 등교해야만 했습니다. 깨어 있는 미국 지식인들은 거침없이 몰아 부치는 공교육의 폭거에 저항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피 흘리며 투쟁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교라는 제도는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저항의 대상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열을 위해 등급을 매기는 시스템의 폭거에 누가 더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가에 따라 미래가 행복할 것 같은 착각을 부추기는 세상이 되어 갑니다. 대한민국에서 책은 교육의 도구에서 멀리 소외된 지 오랩니다. 과연 책을 포기하고, 나 다움을 거세하고 기득권 층의 설계에 놀아나 그들 뜻대로 줄 세우기 경쟁에서 살아 남으면 달콤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일까요?

스테판 에셀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외칩니다.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무언가에 분노한다면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젊은이여 분노하라!” 자유를 향한 분노는 ‘생각을 생각하는 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힘은 글을 써야만 길러질 수 있습니다. 생각을 언어로 쏟아내고 문장으로 표현한 내용을 바라보며 한 걸음 떼어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 힘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할 때 자유를 항한 위대한 걸음을 뗄 수 있습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