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공장총량제는 수도권 과밀화를 방지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한 국가의 주요 시책이다. 서울, 인천, 경기 등 3개 시도에 대해 새로 지을 공장의 건축 면적을 총량으로 설정해 이를 초과하는 공장은 규제한다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다.

취지가 지방의 경제를 살리고 균형발전을 도모하는데 있으나 운용 과정에서 이미 여러 차례 변칙이 오갔다. LG필립스 파주LCD 공장과 삼성 고덕산업단지, LG 진위산업단지 등이 특별물량을 배정한다는 이유로 규제망을 피했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클러스터 유치를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도 수도권 공장총량제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적용한다면 SK하이닉스와 같은 대규모단지는 사실상 수도권에 들어설 수 없다. 그러나 과거처럼 특별물량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이를 허용한다면 수도권 입지도 가능하다. SK하이닉스도 이런 점 등을 고려해 입지가 유리한 수도권으로 진입을 기대하고 있을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수도권에는 용인과 이천시가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지방에서는 경북 구미시와 충북 청주시가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산업부가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120조 원 투자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반도체 공장 4개와 협력업체 50여개사가 동반 입주하게 된다.

지방의 자치단체로서는 당연히 탐이 나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특별물량의 이름으로 진행될 거라는 얘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클러스터 부지 확보를 위해 올 상반기 중 수도권 정비위원회에 특별물량 신청을 준비할 것이라 한다. 수도권 정비 계획에 따르면 경기도가 배정받은 입주물량은 2020년까지 대부분 확정 상태라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

지난 22일 광주에서 열린 제15회 영호남 시도지사협의회에서 공동정책 논의 과제로 수도권 공장총량제 준수 강화가 채택되고 8개 시도지사가 관련한 성명서를 낸 것도 이런 움직임에 대한 절박한 대응이라 볼 수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보다 앞서 18일 제주도에서 열린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공장총량제 완화를 우려, 비수도권 시도지사의 협조를 요청한바 있다. 수도권 공장총량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게 도와달라는 뜻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가 또다시 수도권에 넘어간다면 지방은 그야말로 소멸이 가속화된다. 지난해 정부는 수도권 주택 수요를 잡겠다고 3기 신도시 입지를 선정 발표하는 등 수도권에 30만 가까운 집을 짓겠다고 했다. 공장을 짓고 집을 지으면 서울 사람이 이사하는 것이 아니고 지방에서 사람을 끌어들이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지방 소멸 위기감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지방정부가 힘을 합쳐 이것만은 꼭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