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br>​​​​​​​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포항 지역의 명문고인 포항고를 과거 영일군 지역내로 이전하는 논의가 물밑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포항고는 오랫동안 이 지역의 최고의 명문교로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 왔다. 그러나 2008년 포항에 고교평준화가 도입되면서 포항고의 명문교로서의 역할은 끝이 났다. 포항고의 이전 검토는 시 외곽으로 학교가 옮겨가게 되면 농어촌지역학교로 지정받아 평준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선발의 자율성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명문교의 영광을 다시 찾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포항고의 노력은 최근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폐지 반대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서 자사고의 상당수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교육 당국이 자사고 재정 평가 기준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담당할 각 시도교육청은 평가 지표를 대폭 바꾸거나 재지정 커트라인을 기존보다 대폭 올렸다고 한다. 자사고 측과 학부모 단체들은 이들 시도교육청이 자사고를 없앨 목적으로 평가 기준을 변경했다고 보고 있다.

원래 자사고의 뿌리는 현 진보정부의 뿌리인 김대중 정부 때 도입한 ‘자립형사립고’였다. 고교평준화 체제를 유지하면서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 특수성을 확대하기 위한 학교 제도다. 고교 평준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했다. 자사고, 과학고, 영재고, 외국어고 등 고교평준화를 보완하는 제도가 도입되었고 이는 고교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적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칭찬을 받아온 제도이다. 그렇지만 현정부는 대부분의 특수목적고를 없애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듯하다. 과학고를 제외한 모든 특수목적고들이 폐지의 사정권안에 들어온 듯하다. 과연 이 정부가 기를 쓰고 시행하려는 고교평준화 정책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1970년대 중반에 고교 입시 과열로 인한 교육문제와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실시됐다. 1960년대에 중학교 입시경쟁이 치열해지고 1965년 유명한 ‘무우즙’사건이 터졌다. 필자는 무우즙 사건 당시 중학입시를 치른 당사자로 이를 목격했다. 이러한 입시과열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를 실시하게 됐다. 고교평준화정책은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시작하여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전국 대부분의 중소도시에서도 고교평준화가 실시되고 있다. 사실상 중학입시 과열을 막기 위해 중학입시를 폐지했고 고교입시 과열을 막기 위해 고교평준화를 실시했다.

그렇다면 대학입시 과열화를 위해 대학평준화도 실시할 것인가? 아마도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대학평준화를 실시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대학입시가 과열되어도 대학평준화를 실시할 수 없는 것은 인재 선발의 브랜딩(Branding)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진학, 취직, 자격취득, 공무원 진출 등 다양한 진로에 있어서 브랜딩은 필요한 과정이다. 대학과 전공은 이와 관련이 있다. 고교평준화 정책하에서는 브랜딩은 대학 단 하나로 결정되기 때문에 고교평준화가 가열될수록 명문대를 향한 열망과 대학입시 과열은 더 심해질 수 있다. 대학입시 과열은 결국 창의적 교육의 상실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의 브랜딩이 대학 하나로 결정된다면 명문대 입시과열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반면 다양한 고교의 존재는 유연한 두뇌활동을 하는 시기인 10대에게 창의적인 교육을 심어주고 그들의 브랜딩의 다양성을 줄 수 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브랜딩을 함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창의성 배양, 그리고 브랜딩 관점에서 본다면 무조건적인 고교평준화 정책은 옳은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선진국처럼 고교평준화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고교는 존재하여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교평준화 정책이 바뀐다면 언제 우리도 창의적이고 다양한 브랜딩의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