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245호인 경주 나정(蘿井)이 신라 소지왕 9년(487) 봄 2월에 시조 박혁거세가 탄강(誕降)한 곳에 세웠다는 국가 최고 제사시설인 신궁(神宮)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고고학적 증거가 확인됐다.

이곳을 발굴 중인 중앙문화재연구원(원장 윤세영)은 이전 조사에서 확인된 나정 정중앙 8각형 건물지(한 변 8m. 지름 약 20m) 주변에서 이 8각형 건물지 보다 앞서 축조되었음이 분명한 도랑 같은 대형 구상(溝狀) 유적을 확인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이 구상 유적은 마치 훌라후프처럼 원형을 이룬 채 한 줄로 연결되어 있으며 크기는 지름 약 14m에 너비 약 2m 안팎, 깊이는 최고 2m 내외로 밝혀졌다.

그 안쪽 토층은 조사 결과 크게 3개 층위를 이루고 있음이 드러났다.

맨 위층에는 숯을 소량 포함한 암갈색 진흙이었으며, 중간층은 밝은 황색이 도는 풍화토를 깔았고, 가장 아래층에는 회색 진흙이 퇴적되어 있었다.

암갈색 사질토와 명황색 풍화토는 8각 건물지를 축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다진 토층으로 확인되었으며 또 그 중앙에서는 우물과 기둥 구멍 흔적도 드러났다.

따라서 8각형 건물지 이전에 이미 이곳에는 우물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모종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는 것이다.

발굴단은 이 같은 조사성과는 ‘삼국사기’가 말하는 신궁(神宮) 관련 기록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소지왕 때에 시조 박혁거세가 탄강한 나을(奈乙)이라는 곳에다가 신궁을 세우고 그를 제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나을은 현재의 나정(蘿井)일 것이라는 게 학계 다수가 일치하고 있다.

이 같은 ‘삼국사기’ 기록을 존중한다면 신궁은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가 탄강했다는 전설이 서린 나을(나정)이라는 우물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셈이 된다.

아울러 이번 조사 결과 제사시설임이 분명한 8각형 건물지 이전에 그 자리에는 원형 우물이 있었음이 드러남으로써 이런 문헌기록과 완전히 합치되고 있다.

한편 이번 조사 결과 평기와 출토 유물 중에는 기존에 확인된 ‘生'(생) 외에도 ‘義鳳四年'(의봉4년. 679년)이라는 글자가 적힌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부속 건물터 1채도 추가로 드러났다.

일부 ‘生'자명 기와는 주사(朱砂=황화수은)로 생각되는 붉은 물감이 칠해져 있었다.

주사는 도교신학에서는 약효가 가장 뛰어난 선약(仙藥)으로 간주된 것은 물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주술력이 있는 물질로 여겨졌다.

경주/김성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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