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뭉쳐서 470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한 가운데 여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이 많게는 수백억 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다. 법정 시한을 엿새나 넘기고, 결국엔 야 3당을 제외한 채 긴급히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면서도 실세 의원들이 ‘쪽지예산’은 잊지 않고 챙긴 셈이다. 졸속·부실 심의로 일관했다는 비판에다가 실세들만 잇속을 챙겼다는 험악한 비난까지 덧붙고 있는 형국이다.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는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지역구인 세종시에 건립예정인 국립세종수목원 조성예산은 정부안 303억4천500만원에 무려 253억원이 추가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지역구인 경기 의정부 망월사역 시설개선비와 의정부 행복두리센터 건립비도 각각 15억원, 10억원 씩 증액됐다. 안상수 예결위원장은 강화 한겨레 얼 체험공원 예산 7억8천700만원 등 25억6천300만원 확보를 성공시켰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 조정식 의원은 지역구인 경기 시흥을에서 죽율 푸르지오6차 앞 선형불량도로 개선비 10억원, 한국당 간사 장제원 의원은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에서는 분뇨처리시설 사업비 등 80억 원을 더 받아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지역구인 전북 군산에서 노후 상수관망 정비 예산 22억4천900만원을 비롯, 모두 59억5천900만원을 더 챙겼다. 예산안 합의의 당사자인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대중음악자료원 설립 예산 2억 원을,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김포공항 주변 고도제한 연구예산 5억 원을 증액했다.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23조원 규모의 ‘가짜 일자리’ 예산에서 8조원, 1조원대 남북협력기금에서 5천억원을 각각 깎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예산 삭감은 당초 밝힌 규모에서 크게 못 미친 7천억원대에 그쳤다. 복지 분야에선 한국당이 ‘확대’를 주장한 아동수당 예산이 2천억원 이상 늘어났다.

국회는 해마다 예산철만 되면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잡다한 정치 쟁점들을 펼쳐놓고 정치 공방만 펼친다. 그러다가 막판에 이르러 법적 근거도 없고 회의록조차 한 줄 남기지 않는 ‘소소위’에서 예산 삭감 시늉만 내면서 이렇게 실세들의 지역구 민원 쪽지예산이나 챙기는 몹쓸 비공개 밀실 증액 관행의 추태를 연출한다. 더욱이 국회는 그 와중에도 국회의원 세비를 전년보다 1.8% 인상하는 내용의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일을 놓치지 않았다. 국회의원 세비는 지난해(2.6%)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오르게 됐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이 뒤집혀 멸공봉사(滅公奉私)의 이미지만 덧내게 된 이 같은 후안무치한 행태로 인해 한없이 증폭되고 깊어질 정치불신이 참으로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