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규열한동대 교수
▲ 장규열한동대 교수

계절이 건너간다. 가을을 거쳐 겨울로 건너간다. 열매와 결실에 감사하면서 한 해를 마감하며 백설의 겨울을 맞을 채비에 나선다. 가을처럼 늘 풍성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을 알리는듯 마음을 춥게 하는 뉴스가 지면을 채운다. 인천의 중학생이 그의 생을 마감했다. 상세한 사연이야 더 밝혀질 일이지만, ‘학교폭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동급생이면 친구들이 아닌가.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고 마을에서 그 또래 시절을 즐겁게 누려야 하지 않았겠는가. 어쩌다 우리의 10대는 우정을 쌓기보다 폭력으로 그늘지는가. 이걸 놓고 이 사회는 바로잡을 생각을 하고나 있는가.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피해 중학생은 러시아 출신 어머니를 가졌다고 한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였던 것이다. 러시아 사람처럼 생겼다는 탓에 따돌림과 구타, 외로움과 폭력에 시달렸다는 게 아닌가. 어머니가 혹 ‘나그네’였을지언정 그 중학생은 분명 ‘한국사람’이었을 터이다. 그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아니 세상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는 어찌 할 수 없는 것. 이걸 두고 이어지는 지옥같은 일상은 감내하기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혹 그래서 뛰어내린 것일까. 아 그 어머니가 짊어질 회한과 자책은 어찌해야 하는가. 그들 중학생들은 이토록 비뚤어진 심사를 어디서 배운 것일까. 학교는 책임이 없는가, 사회는 책임이 없는가. 이 나라는 이미 ‘다문화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에겐 이를 잘 담을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다. 해결할 다짐은 서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발표에 따르면, 교육현장에서 다문화 학생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학교생활의 적응과 차별 등에 의한 문제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다문화 학생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64.7%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를 꼽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 차이나 사회적 관계 형성의 문제가 심각하다. 즉 따돌림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어 정상적인 친구 관계가 어려운 것이다. 외톨이가 되는 처지를 이겨내기 위해서 부적절한 행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심각한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교육이 나라의 미래를 세우는 길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 학교폭력과 다문화의 등장을 보다 깊이 자각해야 하며 지혜롭게 대처하여야 한다.

우선 폭력은 범죄다. 그 종류, 가해자의 성별과 연령을 불문하고 폭력은 파괴적이며 비정상적인 결과를 낳는다. 폭력의 장소가 학교라 해서 그 폭력에 대한 대응을 유연하게 하는 일은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오히려 단호하게 막아내고 예방해야 한다. 교육적 효과를 생각해서 처벌을 경감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므로 처음 발생했을 때 분명하게 지적하고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문화는 다른 문화인가. 다르게 보이지만, 이제는 ‘우리 문화’가 되어가지 않는가. 사회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관대하게 바라보고 폭넓게 감싸 안아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교육 당국이 선생님들과 함께 다문화교육에 정성을 기울였으면 한다. 세상은 저렇게 풍성하게 어울리며 돌아가는데 우리가 아직도 지방색을 고수하고 문화적 울타리를 고집한다면, 겉으로만 풍요롭고 안으로는 편협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 않을까.

겨울이 다가와 그런 것일까. 마음마저 얼어붙게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학교 안 폭력이 안타까운만큼, 그 배경이 되었다는 다문화 차별과 혐오는 부끄럽기 그지없다. 다문화 배경을 가진 우리의 자녀들이 마음껏 웃으며 배우는 학교를 상상해 본다. 적어도 다문화가 까닭이 되어 자행되는 학교 폭력이 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폭력은 범죄다. 다문화는 우리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