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린다고 우리나라가 북새통을 떠는 시각, 쾰른에서 어학과정을 공부하던 때 겪은 일이다.

조용한 거리에 유모차 부대가 출현한다. 아이들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유치원 교사들이 경찰이 쳐놓은 줄을 따라 거리행진을 하는 것이다. 호기심 많은 내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시위하는 까닭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치원 교사봉급이 너무 작아서 봉급인상 시위를 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온 때문이다. 당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의 지배정당은 진보성향의 사회민주당이었고, 당연히 그들은 유치원을 포함한 교사와 교수의 봉급인상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 재정이 녹록치 않아서 교사들의 요구에 응할 형편이 아니었다. 이에 유치원 교사들은 물론이고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들이 동조시위를 벌인 것이다. 학부모들에게 왜 시위에 동참하는지 묻자 흥미로운 답이 돌아온다.

“아이 돌보는 유치원 선생님 봉급이 작으면, 그들은 제2, 제3의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겠어요?!”

그때까지 대한민국이 우주의 중심이라 알고 살아온 나는 적잖은 충격과 신선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나, 선생님 봉급 올려달라고 시위하는 학부모들이 있네!’ 거기서 나는 라인강의 기적, 철학과 음악, 대학과 정치의 나라 도이칠란트의 저력과 합리성을 대면했다.

교사의 낮은 봉급이 야기할 유치원 교육의 저급한 수준과 아이의 정서적인 불안에 동조한 부모들의 유모차 시위행진은 심히 유쾌한 것이었다.

얼마 안 있어 유치원 교사 처우개선 방안이 나왔고, 유치원은 정상화되었다.

분단돼있던 당시 서도이칠란트의 국민총생산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20만 미군주둔을 감당했고, 전 세계에서 온 13만 외국유학생을 공짜로 교육시켰다.

그들은 국적 불문하고 유치원과 초중등학교는 물론 대학과 대학원까지 무상으로 교육하고 있었다.

반값등록금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사립유치원 비리가 불거져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래서다. 모든 교육기관을 공적 기관으로 설립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도맡아 경영함으로써 균질적인 교육을 완전 무상으로 보장해온 도이칠란트. 그런 곳에서 교육 담당자들의 비리를 찾아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이번 사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느끼는 사람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터. 자신들의 도덕성이 교육 공무원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면서 징계 공무원 수치를 들이대는 걸 보면 유구무언이다.

자기들이 설립한 유치원이 사유재산임을 주장하면서 폐원과 폐쇄 운운하는 양상을 볼라치면 가관(可觀)에 점입가경이다. 그러니까 돈벌이 수단으로 유치원을 세워서 경영했단 얘기 아닌가.

이 나라 초중등학교와 대학교까지 마구잡이로 접수한 사학재단의 행악질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 새삼 무슨 말을 하겠는가?! 참람하고 다시 참람해 하늘 우러르기가 두렵다. 어디 돈 벌 곳이 없어서 교육계에 추악하고 더러우며 악랄한 촉수(觸手)를 뻗쳤단 말인가?! 교육 한답시고 어리숙한 정부와 무능하고 부패한 공무원, 돈 없고 마음 약한 학부모 등골을 빼먹어온 사학재단과 그 앞잡이들의 ‘돈 놓고 돈 먹기’는 이제 근본부터 잘라야 한다.

세계경제의 한 축을 지탱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이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썩어 문드러진 것은 정부와 최고 권력자들의 수수방관이 근본 원인이다. 이참에 교육의 근간까지 낱낱이 들여다보고 대수술을 감행해야 하리라 믿는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