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시대를 제대로 못 읽어내는 자유한국당의 난독증(難讀症) 고질병이 도지고 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질 때의 장담처럼 환골탈태의 새 길을 열어가기는커녕 미래가 점점 더 혼미해지고 있다. 그 중에도 가장 수상한 것은 민심의 소재와 나라의 비전을 담은 감동적인 이정표를 세우고 새 깃발 아래 인재들을 품으리라던 밑그림이 사라진 일이다. 뒷방에서 무슨 말들을 나누는지 다 알 수는 없으나, 혁신을 위한 몸짓은 여전히 감감하다.

전권을 약속받고 조직강화특별위원이 된 전원책 위원은 날마다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은 담론들을 흘려 호사가들 따따부따의 소재를 보태고 있다. 조용히 조직정비의 칼자루를 휘둘러야 할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새로운 척도를 위한 사전작업일 수는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시대에 맞고 미래가치에 부합하는 일관된 내용이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원책의 발언은 사방에서 ‘갈팡질팡’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가 극렬 친박그룹인 일명 ‘태극기부대’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한 것부터 반향이 깊다. 지난 2012년 비상대책위가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진보주의 강령을 받아들인 것을 한국당 침몰의 원인이라고 지목하면서 전원책을 향한 우려의 눈길은 부쩍 사나워지고 있다. ‘적폐청산’ 폭탄에 초토화된 보수를 포괄할 설계도의 포석일지라도 방향이 그래가지고는 안 된다. 끼리끼리 뭉치는데는 유리할망정 민심을 얻는데는 오히려 역효과다. 국민들이 원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진취적인 가치는 모두 진보에게 내어주고, 케케묵은 꼴보수 시대의 향수만 부여안고 퇴행하겠다는 심산이 아닌 이상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도대체 김병준 위원장이 야심차게 말하던 치열한 ‘가치논쟁’은 어디로 갔는가. 전원책의 어지러운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전혀 논쟁하지 않는 한국당 정치인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정책에서 여러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지적이 점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일련의 변화가 단박에 자유한국당을 필두로 하는 보수정치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판이다. 자기가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허물로 인한 반대급부만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발상은 이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자유한국당은 다수 국민들이 ‘묻지마 지지’를 견고히 받쳐주던 시대를 완전히 잊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이 남긴 ‘국정농단’으로 깨지고 부서진 잔해가 아직 발 아래에 그대로 널려 있다. 터무니없는 추억에 젖어 진보정권의 에러(Error)에나 박장대소하는 일로 반전의 기회를 노린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바닥민심에 발 담그지 않은 정치담론은 소용이 없다. 지향점부터 확 바꿔야 한다.

자유한국당을 향한 민심의 요체는 여전히 ‘수구꼴통’·‘반평화 세력’·‘부패집단’·‘부자들만 편드는 정치인’·‘기득권 수호세력’·‘패거리 정치의 화신’ 따위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확(的確)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혁신의 틀을 짜야 한다. 어느 부분이 썩고 병들었는지, 민심을 얻기 위해서 세워야 할 혁신의 깃발은 어때야 하는지부터 확정하는 것이 순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가치논쟁’의 용광로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야 한다. 그 안에서 타 죽을 각오를 하고 치열하게 논쟁하라. 이 시대에 ‘보수정치’가 정녕 존재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지혜를 짜내고 또 짜내야 한다. 조강특위 위원 한 사람의 말에 이리저리 출렁거리는 이 해괴한 난장 속에서 더 이상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지독한 난독증을 그대로 갖고서는 도무지 희망이 없다. 이쯤 됐으면 제발 뭔가 좀 시원하게 달라져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