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때 우리도 수도 서울을 ‘서울 공화국’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서울특별시만 발전하고 비대해지는 것을 빗댄 말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으로 노출된 평양의 모습은 ‘평양 인민 공화국’이라고도 할만하다. 면적 1천300㎢, 인구 약 300만 명의 평양은 18구역 2군으로 구성된 그들 말대로 자랑스러운 ‘혁명의 수도’이다. 6·25 전쟁 시 완전 폐허된 도시가 화려한 도시로 변신하였다. 카메라에 잡힌 30∼40층의 아파트는 페인트칠까지 하여 더욱 화려해 보인다. 대동강가의 여명 거리는 주로 김일성대학 출신 국가 간부들이 거주하고, 과학자 거리는 김책공대 출신 과학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평양 지하철은 천리마선·혁신선·만경대선(서울의 1·2·3호선) 등 전체 길이 34km이다.

카메라에 잡힌 평양만 보고 북한을 말할 수 없다. 남북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 개성시 주변과 금강산 가는 길가의 북한의 농촌을 살펴본 적이 있다. 개성공단 북측 출입문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바싹 야윈 북한 어린이를 본 적이 있다. 어릴 때 내 모습과 흡사하여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있다. 강원도 통천으로 통하는 비포장도로에서 남한에서 볼 수 없는 소달구지를 보았다. 지금도 북한의 산은 어딜 가나 민둥산이다. 연료가 부족한 시골에서 산의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한 결과이다. 우리도 내가 초등학생이던 1950년대 땔감용 나무를 산에서 구해 사용하였다. 지금도 북한의 농촌 사정은 우리의 60년대 우리와 비슷하다. 이처럼 북한의 수도 ‘평양공화국’과 ‘지방 공화국’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평양에 거주하는 사람은 핵심 계층으로 신분도 다르고 풍채도 다르다.

북한 당국은 평양에서만 정상회담 등을 고집한다. 그들은 카메라를 통해 비쳐지는 평양의 발전된 모습을 세계에 알려 체제 선전수단으로 삼고자 한다. 이번 3차 남북정상회담도 평양에서 개최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평양 정상회담에 다녀왔다. 김대중 정권 초반부터 노무현 정권 말기까지 남북의 크고 작은 회합도 모두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내년 교황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평양 방문이 될 것이 뻔하다. 북한 당국은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평양만큼은 집중 관리하고 육성하였다. 105층의 류경호텔을 건설하고, 15만 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5·1 경기장 건설도 그 일환이다. 우리로서는 개인 소유 땅값 때문 엄두도 못 낼 일을 북한 땅에서는 당이 결정하면 가능한 일이다.

북한 주민들은 누구나 평양거주를 희망하지만 그 꿈이 실현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북한에서는 ‘평양 가고 싶어 병아리도 피양 피양 하고 운다’고 한다. 운 좋게 평양에 직장을 구하거나 평양 거주자를 배우자로 구하면 평양 거주도 가능하단다. 남한같으면 특혜도시 평양 집중 정책에 엄청난 비판이 따르겠지만 북한 땅에서는 아직도 엄두도 못 낸다. 가족주의적 왕조 국가인 북한 땅에서 ‘평양 공화국’에 대한 비판은 수령 비판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통망이 제대로 건설되지 못한 북한 농촌주민들의 평양방문은 사실상 어렵다. 함경도나 양강도 사람에게는 평양의 소식이 감감할 뿐이다. 과거 우리가 서울 구경이 어려웠던 사정과 흡사하다.

그러나 북한 땅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북한에도 제도, 관행, 의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미 외국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휴양 시설 건설이 한창이다. 평양의 순안 비행장을 국제 공항으로 단장하고 삼지연 비행장과 원산의 비행장도 확장했다. 북한의 휴대 전화가 500만 대를 넘었다. 북한에도 시장이 4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북한 땅에서도 한류가 몰래 퍼지고 있다. 북한사회가 정보 사회에 진입했다는 증거이다. 북한 주민들이 평양공화국에 대한 불만과 비판적 시각이 집단 노출될 때 북한의 변화는 본격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