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지영포스텍산학협력교수
▲ 곽지영포스텍산학협력교수

“미쳤다. 차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업무 차 포항, 서울, 고양, 성남, 무주, 그리고 포항을 한 바퀴 도느라 이틀 새 혼자 950km를 운전했다는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니 거쳐야 할 목적지가 너무 많고 목적지 사이 연결 교통편이 마땅치 않은 데다 약속시간 간격도 빠듯해서, 그냥 직접 운전하기로 했다. 평소에도 운전하기를 좋아하니 차를 갖고 떠나는 전국 일주 여행이다 생각하고 한번 즐겨 보기로 한 것이다.

역시 녹록치 않은 여정이었다. 그런데 정작 운전 그 자체가 그리 힘든 것은 아니었다. 상황별로 나타나는 부정적 감정 반응이 문제였다.

바둑알같이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 속에 가로 세로 줄 맞춰 갇혀 한참을 서 있으려니 혹여 약속시간을 못 맞출까 ‘①조급증’이 났다. 스마트 폰과 차량용 네비게이션(Navigation)에 나란히 길안내 경쟁을 시켜 두고 궁리해봤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 결국 더 막힐 때의 뒤늦은 ‘②후회’와 ‘③좌절감’이 힘들었다. 마음이라도 느긋하게 갖자며 애써 평정심을 찾고 있는 내 눈앞에 얌체 운전자의 끼어들기 신공은 ‘④분노’를 유발했다. 고속도로 정체 구간을 겨우 지나니 염치없는 ‘⑤졸음’이 자꾸 기웃거렸고, 두 개의 길안내 음성과 대화해 가며 ‘⑥지루함’을 이겨야 했다. 시간 맞춰 겨우 도착한 목적지 주변에선 또 주차할 곳을 찾느라 ‘⑦진땀’이 났다.

공사나 사고 등으로 예상 못한 정체 구간이 갑자기 나타나면 ‘⑧놀람’과 ‘⑨답답함’이, 처음 가보는 낯선 길에선 ‘⑩걱정’이 번갈아 찾아왔다. 무주는 자주 가본 곳이었지만 계절이 바뀌어 비수기가 되니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자정이 다되어 접어든 리조트로 가는 산길은 가로등도, 함께 달리는 다른 차도 거의 없어 위험해 보여 ‘⑪불안’했고, 전조등을 상향으로 켜고 달리다 앞에서 차가 나타나면 ‘⑫허둥지둥’ 서둘러 제자리로 돌려야 했다.

이틀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날 오후 수업의 주제가 공교롭게도 스마트 카(Smart Car)였다. 자동으로 차선을 유지해 주는 Lane Keeping Assistance, 무인 자동 주차, 고속도로 주행 지원, 각도와 밝기가 자동 조절되는 지능형 전조등, 노변 장애물 감지 및 전방 공사 구간 안내 등 여러 기업들이 실험하고 있는 지능화된 운전자 지원 기능의 사례들을 이틀간 내가 겪은 열두 가지 경험에 빗대어 소개하였다. 덕분에 내 한마디 한마디에 더 마음이 가득 실린 생생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어, 이틀간의 내 고생길이 그나마 쓸모가 있었다는 생각에 위안이 되었다.

어린 조카가 요즘 만화 영화 ‘꼬마 버스 타요’에 푹 빠져 있어서 추석 연휴 내내 같이 보게 되었다. 버스, 견인차, 구급차를 닮은 캐릭터들이 등장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울고 웃는 이야기에, 사실 조카보다 내가 더 매료되어 본 것같다. 문제가 생기면 차들이 서로 소통하며 해결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차들이 힘을 합쳐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한다. 혹시 어느 캐릭터가 미숙한 행동을 하거나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는 즉시 사과하고 반성하면서 학습하고 성장한다. 스마트 카의 궁극의 모습인 자율 주행 차는 사회적 논란 속에서 소규모 실험만 진행되고 있는데, 사고가 날 때마다 난관에 부딪힌다. 때문에 자율 주행 차는 아직 세상에 널리 통용되기에는 요원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공감대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공감과 수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바람직한 스마트 카의 모델이 있다면 바로 타요와 그 친구들이 아닐까?

스마트 카가 주인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화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운전자 감정 제어 지원’ 기능까지 탑재하게 된다면 만화 속 같은 따뜻하고 바람직한 세상도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