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래<BR>시조시인·수필가
▲ 김병래 시조시인·수필가

라면 하나에 물을 좀 넉넉하게 붓고, 된장 반 술과 파와 풋고추를 썰어 넣고 끓인 다음, 둘로 나누어 찬밥을 한 술씩 말면 우리 내외 단란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가끔씩 별미로 먹는 소박한 식단이다. 돈으로 치자면 천 원쯤 될 터이니 소위 ‘천 원의 행복’인 셈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십억이 넘는다는데 무얼 먹든 굶어죽을 염려는 없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에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배를 채웠으니 식후경, 들판으로 나간다. 더도 덜도 아니게 쾌적한 가을의 볕과 바람, 차츰 황금빛을 띠며 영글어가는 벼들, 높푸른 하늘에 유유히 떠가는 흰 구름처럼 몸과 마음이 더없이 자유롭고 한가하다. 이만큼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돈과 권력, 명예를 움켜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으로도 바꾸고 싶지 않은 평온이요 여유로움이다.

재벌들은 벌어놓은 돈벌이에 노심초사할 것이고, 권력자들은 치열한 권력다툼에 혈안일 것이며, 혹자는 자칫 멍에가 되는 명예에 집착하겠지만, 그 어느 것도 갖지를 못했으니 나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소위 갑질을 일삼는 많이 가진 자들과 그 횡포에 기죽고 멍드는 을들도 많지만, 갑을의 논리를 벗어난 병이나 정도 없지는 않은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삶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에 이견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 행복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기준과 조건이 다른 것 같다. 행복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욕구가 충족되어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라고 한다. 행복감이란 다분히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말이다. 바라는 기대치가 높을수록 그만큼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행복이고, 반대로 욕구가 아주 소박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인생사 모든 것이 그렇듯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것도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그렇다고 행복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나 조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나 건강에 문제가 없고 가족은 물론 이웃이나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의 기본조건일 것이다. 일견 대수로울 것이 없는 조건인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을 고루 잘 갖춘 사람이 드물 정도로 어려운 조건이기도 하다. 호사다마란 말도 있듯이 세상은 어디에나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다만 악조건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잃지 않는 긍정의 마인드가 행복을 보다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요즘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개 사업에 실패하거나 중병에 걸려서 모든 걸 버리고 홀로 산 속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인데, 의식주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모두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회생할 수 없도록 실패와 좌절이었던 처지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반전의 삶으로 바뀔 수 있다는 예를 보여주었다.

행복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찾는 것이다. 기왕에 있거나 가진 것 중에서도 찾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의 요소다. 무궁무진한 삼라만상이 그렇고, 그 중에 살아있는 내 생명이야 말로 세상 무엇보다 엄청나고 소중한 행복의 요소다. 그것은 최고의 부와 권력을 가진 자가 그 모두를 내놓고도 바꾸거나 연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결국에는 빈손으로 병들고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 생명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조건 팔 할은 충족이 된 거라는 생각이다.

가뭄과 태풍이 비껴간 들판은 올해도 풍년이다. 보릿고개를 넘어온 세대에게는 황금물결 넘실대는 들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하고 넉넉해진다. 수로에 물옥잠이 자라고 있어서 기대를 했는데, 오늘 드디어 청초한 남청빛 꽃이 피어서 또 한 기쁨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