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희수필가
▲ 김순희수필가

책을 처음 자세히 들여다 본 곳은 화장실이었다. 사람보다 바람이 더 자주 드나들 수 있게 문도 따로 없이 입구가 달팽이처럼 생긴 그곳에는 삼촌 고모의 교과서와 참고서들이 있었다. 지금처럼 두루마리 휴지나 사각티슈는 구경도 못하던 시절, 볼일을 보고 난 후 그만한 게 없었다. 한 쪽을 부욱 찢어 비벼주면 쓰기에 좋을만치 부드러워진다.

그 이전부터 철지난 책들이 거기 있었겠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일곱 살 쯤이었다. 처음엔 그림만 보며 책장을 넘겼고,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글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만히 앉아서 아랫배에 힘을 주다가 철사고리에 걸어둔 책을 읽게 되었다. 수학공식이나 과학용어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내가 가장 좋아한 똥닦개는 국어교과서와 국어완전정복이었다.

한 권을 그대로 책머리에 구멍을 뚫어 손이 닿는 벽에 매달아 두었는데, 펼쳐진 곳을 읽다보면 재미있어서 정작 볼일이 다 끝난 뒤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화장실을 쉽게 나올 수 없었다. 한 장을 뜯어야 뒤처리를 할 수 있었지만 국가가 엄선한 소설과 수필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서 나는 뒷간에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완전정복에는 어떤 글이든지 전문이 실려있지 않았다. 이야기에 몰입하는가 싶은 찰나에 지문이 끝나버려서 뒷이야기가 무척 궁금했었다.

지금이야 ‘네이버’라는 친절한 선생님이 곁에 있어서 원하기만 하면 눈 앞에 펼쳐주지만 그때는 나 혼자 상상해서 나머지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언니나 할아버지가 미리 앞장을 찢어버린 단원은 이야기의 처음이 사라지기도 했다. 내 상상력은 마구마구 꿈틀대며 담장을 넘어갔고 구리구리한 변소냄새도 소설의 클라이막스 덕분에 오히려 구수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세 살 많은 언니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 시절 부모님은 안동에서 떨어진 포항에 살았고, 삼촌과 고모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찾아 도시로 떠나고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모님 대신으로 옷과 학용품을 부족함 없이 사주셨지만 좋은 책을 골라주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 하셨을 것이다. 언니는 나보다 몇 발 앞선 선배역할을 했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춘희’, ‘제인에어’, ‘여자의 일생’ 같은 명작들을 빌려 와서 읽고 어깨너머 곁눈질 하는 내게 순서를 넘겨 주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 읽었다. 언니가 읽은 다음 봐야했고 반납해야 하는 기한이 있는 책이라 읽어내기에 바빴다. 그러다 슬슬 재미가 붙어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났다.

6학년 가을쯤이었나, 삼촌이 월급을 탔다며 서울에서 동화책 한 권을 보내왔다. ‘15소년 표류기’였다. 언니가 빌려온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 내 또래 아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였다. 그 책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책이 아니라 처음 갖는 내책이었으니까. 내 표준전과가 계절이 바뀌면 화장실에 걸리는 운명이 되어도 ‘15소년 표류기’는 오랫동안 책꽃이의 젤 좋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골아이에게 책은 어떤 것이든 귀한 시절이었다. 삼촌 고모들의 버려진 교과서나 참고서 이외에 내 마음대로 펼쳐 볼 만한 책이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 앞으로 날아온 ‘새농민’ 의 부록 ‘어린이 새농민’을 매달 기다리며 그속에 실려온 오성과 한음 이야기에 푹 빠졌다.

나는 그렇게 늘 할아버지 그늘에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첫 운동회에도 내빈석에 앉아서 달리기 하는 나를 향해 박수 쳐 주시고, 처음 잡지책을 내게 안겨주시며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셨다.

지금은 하늘 나라에서 내 인생의 중반부를 응원하며 빙긋이 웃고 계실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 인생이라는 책의 첫 장을 펼쳐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