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의 단기적·일시적 이익에 편승하는 대중영합주의, 즉 포퓰리즘(populism)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포퓰리즘은 국내정치 뿐만 아니라 외교정책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외교는 내정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 아래 중국 및 유럽동맹국들과 무역전쟁을 벌이는가 하면, 중간선거 승리를 겨냥해 북한과의 비핵화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Brexit)’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영국의 통제권을 되찾자’는 요구에 편승하여 유럽연합(EU)을 탈퇴하였으며,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을 비롯하여 그리스 체코 헝가리 폴란드에서 포퓰리즘 정당들이 집권하였다는 사실은 오늘의 국제정치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외교 포퓰리즘’은 대중에 영합하여 국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주의보다는 국수주의, 자유주의보다는 보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바로 이것을 증명한다. 또한 정치지도자가 추구하는 외교 포퓰리즘은 결국 자신에 대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과 연계되어 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유권자의 요구에 대한 수용은 곧 득표와 연결되고 선거에서의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지도자는 유권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 요구가 이해관계 당사국과 갈등을 일으켜서 장기적으로 국익의 손실을 초래할 경우가 문제다. 더욱이 유권자의 요구에 편승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치인의 개인적 이익보다 국익의 손실이 더 클 경우에는 당연히 그 요구를 거절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만약 외교부장관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정치적·단기적 이익과 국가적·장기적 이익 사이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월에 출범한 외교부 산하 ‘국민외교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민외교는 외교정책의 결정과정에 국민이 외교주체로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교 민주화(democratization of diplomacy)’의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외교정책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홍보가 아닌 국민과 정부 간의 쌍방향 소통으로 정책수립과 집행에 절차적 정당성을 제고할 수 있다. 이처럼 국민외교는 공공외교가 더욱 중요해진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엘리트외교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그렇지만 국민외교에는 한계와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외교는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고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일반 국민들의 외교현안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그대로 정책에 반영할 수는 없다. 게다가 외교협상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이익이지 국민 상호간에 갈등을 겪고 있는 개인적·집단적 이익이 아니다. 더욱이 민감한 외교현안일수록 국민들이 협상과정에 개입할 경우 오히려 협상의 입지를 약화시키거나 어렵게 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국민외교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 ‘포퓰리즘 외교’로 변질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치지도자는 외교적 수단을 활용하여 자신의 국내정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론에 편승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국민여론을 동원한 포퓰리즘 외교가 상대국의 그것과 충돌할 경우에는 국가 간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켜서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치지도자는 외교 포퓰리즘의 역효과를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