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용 미
가끔 옥룡사터 동백숲 헤매는 꿈을 꾼다
손에 얹어 온 동백잎을 들여다본다
나는 자주 나뭇잎이나
꽃잎 한 장에서
내 운명을 읽어내려는 버릇이 있는 사람
옥룡사터에는 탑도 부도비도
깨어진 부처도 없다
다만 수천 그루 동백이
탑과 부도비를 대신해 백계산을
뒤덮고 있을 뿐
동백 보려면 옥룡사를 찾지 마라
도선을 불러내지도 마라
심장을 꺼내어 보면 된다
나는 동백잎에 이 말을 새겨두고 내려왔다
동백숲은 어둡고 붉고 소란하다
벌들 잉잉거린다
바람은 붉은 꽃잎 갈피마다 깊숙이 스며든다
동백숲은 합장한 무덤을 심장처럼 품고 있다
심장 위에 누가 동백의 목을 부러뜨려놓았다
동백숲의 한가운데는
죽음을 뻥 뚫려 있다
동백나무 아래 조릿대들이 쓰러져 있다
붉은 숲을 떠나고 있다
수천 그루 동백나무가 탑과 부도비를 대신해 빈 절터에 빼곡한 풍경을 보여주며 시인은 옥룡사 동백꽃을 보려거든 옥룡사를 찾지 말라는 역설을 펴고 있다. 왜일까? 가슴 속 심장의 붉은 피와 짙붉은 동백꽃의 색깔을 대비시켜 심장을 꺼내보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지의 동질성을 들어 사물의 연관성을 이어가는 시안이 밝고 깊음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