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걱정스럽고 또 걱정스럽다. 여차하면 걷잡을 수 없는 지역감정이 폭발할 판이다. 아니, 어쩌면 시한폭탄의 초시계는 이미 작동이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한껏 멋을 부리며 출발한 정권이다. 그런 정권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왜 이렇게 하는지 속 시원한 설명이라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예산 정치보복’ 아니냐는 지역의 분노를 묵살하고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최근 윤곽을 드러낸 정부의 2019년도 시도별 국비예산안이 아연실색을 부르고 있다. ‘TK패싱’ ‘TK예산 차별’ 소문은 벌써부터 떠돌았다.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이상한 대목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대구시는 요구액보다 4천100억원이 깎인 2조8천900억원으로서 반영률이 87.5%에 머물렀다. 경북은 올해보다 839억원이 줄어든 3조1천635억원의 국비가 책정됐다. 당초 요구액보다는 2조3천억원이나 잘린 58% 수준에 그쳤다.

반면에 광주광역시 예산은 2018년 예산대비 13.2%(2천346억원) 증가한 2조149억원이 확보돼 잔치 분위기란다. 전남은 올 예산대비 6천8억원(10.9%) 늘어난 6조1천41억원이 반영됐다. 부산시는 올해보다 7천186억원(13.5%) 늘어난 6조613억원, 경남도도 올해 국비보다 2천602억원(5.7%) 증가한 4조8천268억 원이 반영됐다. 그래서 발칵 뒤집혔다. 자유한국당 대구경북발전협의회는 지난달 30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문재인정부는 대구 경북 죽이기 예산을 사과하고, 즉각 보완대책을 마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장관 5명, 차관 4명을 교체한 문재인정부 2기 인사도 ‘완전한 TK패싱’으로 끝났다.

‘TK예산 차별’ 의혹에 대해 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예산과 정책에 있어서 절대로 TK차별이 없다”면서 뚱딴지처럼 구미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연 일을 증거로 들었다. 기획재정부(기재부) 예산실장은 TK예산 차별의 경우 “상대적으로 완료사업 비중이 높은 탓”이라는 어불성설의 해명을 늘어놓았다.

제아무리 궤변을 펼쳐놓아도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인구가 336만명인 광주·전남에 배정된 예산이 8조1천190억원인 반면 인구가 516만명이나 되는 대구·경북의 예산은 6조535억원에 불과하다는 불합리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대구시는 “반영되지 못한 신규·계속 사업이 많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경북도는 “도민의 삶과 안전에 관련된 생존 예산이 외면당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예산차별을 놓고 ‘적폐청산의 한 과정’이라고 주장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과거 TK정권 치하에서 대구·경북도 그랬으니 입 닥치라는 심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역감정’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이런 불장난이야말로 미래를 망치는 망국적 정치행태다. 고래(古來)로,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참지 못한다’고 했다. 정녕 이렇게 간다면 이 나라 정치는 지역주의의 포로 영역에서 꼼짝 못하고 끝내 썩어문드러질 것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에는 선조들의 깊은 깨달음이 녹아 있다. 미운 사람일수록 잘해 주고 감정을 쌓지 않아야 한다는, 문자 그대로 ‘탕평’의 지혜를 담고 있다. ‘보수궤멸을 통한 20년 집권’을 부르대면서 야당을 향해 ‘협조’를 외치는 일이 우스꽝스럽듯이, TK지역 예산을 싹둑 잘라놓고 ‘TK 각별관리’를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가까스로 치유의 공감대를 넓혀가던 ‘지역감정’의 골을 이렇게 마구발방 파헤치고 있는 정부의 예산정책은 각성되고 혁신돼야 한다. 지역의 숙원예산은 왕창 깎고, 인재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무슨 ‘협치’ 타령인가. ‘미운 놈 떡 빼앗기’로 성취할 수 있는 선진 민주주의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