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르다 결국 화장실을 한바탕 뒤집어 놓았다. 뜨거운 여름 내내 어느 날이면 뭔가 모를 악취 같은 것이 흐르는데, 냄새만큼 참기 힘든 것이 없다. 비 올 것 같은 날, 기압이 낮게 깔리는 날 또는 뭔가 공기를 자극할 만한 원인자와 섞인 날, 냄새는 언제 사라졌더냐는 듯이 코를 괴롭힌다.

냄새와 함께 더욱 괴로운 것은 파리가 몇 마리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파리도 여러 종류인 것이, 이번에 나타난 파리는 내가 줄곧 보아온 파리는 아니다. 보통 파리라면 시골집 밥상 따위에 귀찮게 달라붙는 파리, 집파리일 테다. 집파리는 우리가 늘 보는 파리지만 소화기계 전염병이나 바이러스 등을 전파하기도 한단다. 헌데 이건 확실히 집파리보다 작고 몸 빛깔이 검정보다 차라리 회색에 가깝다. 어찌 보면 연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파리의 정체는 뭐냐. 사전을 찾아보니 쉬파리인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못 보던 파리가 생긴 걸까. 맙소사, 이 파리는 동물의 부육, 그러니까 썩은 고기나 배설물에서 생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원인은 고양이 쪽이다.

고양이는 꽤나 고집스러운 짐승이다.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 생리는 절대로 포기하는 일이 없다. 볼 일 보는 습관 길들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아 모래, 인공 모래 같은 것을 아무리 잘 준비해 줘도 결국 낙착된 곳은 화장실 한 귀퉁이. 화장실을 건식으로 유지하려 해도 고양이 배설물을 정기적으로 물로 씻어내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다. 늘 같은 곳에 볼 일을 봐도 하루 이틀 집을 비우면 그 귀여운 고양이의, 냄새 지독한 분뇨 냄새를 맡아줘야 한다.

어떻게 하다 생겨난 쉬파리들을 근절하기 쉽지 않다. 얘네들은 쉼없이 교미를 해서 알을 까는지 구더기는 전혀 안 보이는 듯한데도 어떤 때는 서너 마리, 어떤 때는 그보다도 많게 벽에 들러붙어 있다. 차마, 살생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도 잠깐, 뭐라도 잡고 눈에 띄는 대로 몇 마리 잡고 보면 한동안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며칠 후면 또 나타나는데 속도가 놀랍다. 워낙 약하게 생긴데다 느리고 작아 벽에 붙은 것을 손바닥으로 슬쩍 눌러보니 그냥 잡힌다. 살생 같지 않게 싱거운 통에 기회 있을 때마다 잡기는 하는데,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저것들도 산 것들인데, 한다.

생각해 보면 파리의 일생만큼 덧없는 것도 없다. 과연 얼마나 오래 사는 걸까. 여름에 성충이 된 파리는 보통 두 달을 살고, 가을에 우화한 파리는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까지 산다고 한다. 짧은 삶을 사는 파리는 날개 달고 24시간이면 벌써 교미하고 3일째면 산란을 한다. 가끔 집앞 느티나무에서 시끄럽게 여름을 나는 매미들이 기운이 다해 툭툭 떨어지는데, 매미 목숨이나 파리 목숨이나.

손바닥으로 쉬파리를 잡아 누를 때 그 가볍디 가벼운 목숨의 무게가 실감나지 않게 실감이 나곤 한다. 내 눈에 뜨인 파리는 목숨이 몇 일 더 짧고 눈에 안 뜨인 파리는 천장이나 비품 뒤에서 몇 일 더 살 것이다. 사람도 그와 다를 바 없다 생각한다. 이 덧없음 속에서 서로 물고 뜯고 오르고 넘어진다. 기뻐하다 울고 그러다가도 웃는다.

몹시 허전한 삶이다.

결국 욕실을 일대 수술하자 쉬파리는 오간 데 없이 사라진다. 너무들 괴롭히고 살지 말자. 싸우지들 말자.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