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매국노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내민 합방문서에 도장을 찍고 그 합방의 효력이 발생한 날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국권을 송두리째 내주고 35년의 일본 식민지배를 받게 되는 통탄스러운 날이 아닐 수 없다. 일제의 강점이 한말의 우리의 쇠약한 국운에 기인한다고 하지만 그 국운을 그렇게 이끈 당시 왕과 친일 관료 세력이 초래한 민족적 참사이다. 다시 광복 73주년을 보내면서도 우리는 나라를 빼앗긴 당시 경술국치일을 회상하고 민족적 자성의 자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8·15 광복절을 국경일로 기념하면서도 8·29 경술국치일에는 관심이 없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경술국치의 슬픈 상처를 잊고 살아가는 듯하다. 광역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이날을 추념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하여 조기를 달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것마저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역사를 잃은 민족은 희망이 없고 희망찬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경술국치일을 국가 추념일로 지정해야할 이유는 분명하다. 먼저 일본 정부 당국의 조선의 식민지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재촉구하기 위함이다. 현 아베 정권은 군사력의 팽창을 통해 국가주의를 날로 강화하고 있지만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없다. 그들은 평화 헌법까지 개정하여 과거의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아베 정부는 8·15 종전기념일을 전쟁영령 추도의 날로 정해 전쟁 영웅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다. A급 전범 14명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는 올해도 일본 정치인들의 행렬은 이어졌다. 아베도 비서를 통해 공물을 어김없이 바쳤다. 전후 그들의 과거를 철저히 반성한 독일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독일은 1946년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12명의 전범들을 처형하고, 수도 베를린에는 홀로코스트 기념관까지 설립하여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직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 치의 반성도 없이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 당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경술국치를 추념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정작 우리 내부에도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은 우리 내부에 존립한 일제 잔재 청산에는 소홀했다. 그후 박정희 정권의 굴욕적인 3억불 대일청구권 자금의 수령은 차치하고라도 지난 박근혜 정권의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10억엔의 합의는 생존한 할머니들의 자존심마저 짓밟아 버렸다. 보수 정권의 국정 교과서 왜곡 문제도 그 발단에는 친일 사관 문제가 결부되어 있고 학계에서는 아직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정당화하는 학자들까지 있다. 국립묘지에는 항일지사들과 친일 부역자들의 묘소가 아직도 공존하고 있다니 할 말이 없다. 친일 부역자들의 후손은 여전히 활보하고 항일 지사들의 자손들은 생계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결국 우리가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 초기부터 친일 청산 문제를 방기하여 민족의 정기를 훼손시킨 결과이다.

우리도 8·29 경술국치일을 국가 추념일로 지정하여 우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늦으나마 항일 애국지사 선양사업에 적극 나섬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정부는 8·29 경술국치일을 국가 추념일로 지정하고 추념주간을 설정하길 바란다. 8월22일 데라우치가 내민 합방문서에 조인한 날로부터 그 효력이 발생한 29일까지를 추념 주간으로 설정하였으면 한다. 이 기간 중 우리는 조기를 게양하고 우리의 굴절된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삼길 바란다. 마침 내년 2018년 4월 13일이 상해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건국 100주년으로 삼고, 일제 잔재의 청산과 독립 정신 계승 사업을 활발히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왜곡된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