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공장에서 꽃 피는 예술… 세계 문화예술 허브로 재탄생
폐허가 된 공장에서 꽃 피는 예술… 세계 문화예술 허브로 재탄생
  • 박동혁기자
  • 등록일 2018.08.13 19:56
  • 게재일 2018.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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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도시 포항 문화예술도시로 가는 길
19세기 대표 공업 지역서
급격한 산업변화로 공동화
예술가들 모여들어 사업 열자
도시 활기·관광객까지 유치

▲ 밀라노 문화예술지구 토르토나와 인접해 있는 나빌리오 운하. 이곳 하천은 19세기 공업지대였던 토르토나 지구에 공업용수를 공급했으며 현재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져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2차 산업인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수십년간 성장하다 최근 철강산업 성장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포항도 4차 산업을 재도약의 기회로 판단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에서 3번째로 구축한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신약개발, 질병원인 분석, 신에너지 개발 등 부가산업을 창출할 전망이고 포항 수중로봇복합실증센터에서 개발 중인 수중로봇, 국민안전로봇 등은 산업뿐만 아니라 실생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새로운 먹거리 산업 중 하나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 오페라 무대제작실로 활용되고 있는 옛 안살도 공장(우측건물).
▲ 오페라 무대제작실로 활용되고 있는 옛 안살도 공장(우측건물).

바로 문화예술산업이다. 인류 역사상 문화와 예술은 대중의 소비 속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어왔다. 오늘날 이러한 문화예술적 콘텐츠를 산업화시킨 것이 바로 문화예술산업인 것이다.

포항시도 지역에 문화예술을 부흥시키기 위해 지난 2016년부터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조성에 나서고 있다.

아직까지는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에 꿈틀로가 선정되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본지는 이번 기획시리즈를 통해 문화예술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해 침체된 구도심과 지역경제 회복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이탈리아 밀라노, 전남 순천 등 타지역 사례를 살펴보고 철강도시 포항이 문화예술도시로 재도약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본다.

글 싣는 순서

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

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
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
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
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


□ 19세기 밀라노의 대표 공업지역

이탈리아 북부지역 최대 도시이자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경제를 이끌어가는 양대 축인 밀라노는 ‘패션의 본고장’이라는 수식어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평가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20년 가까이 지내며 ‘최후의 만찬’을 포함한 수많은 작품을 남긴 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오랜 세월동안 세계의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고 있는 밀라노이지만 정작 밀라노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지구 조나 토르토나(Zona Tortona)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탈리아어 ‘조나(zona)’는 영어 ‘존(zone)’과 같은 의미이며 조나 토르토나는 곧 토르토나 지구를 뜻한다.

밀라노 서남부에 위치한 토르토나 지구는 1865년 포르타 제노바역(Porta Genova)이 들어선 이후 외곽의 농촌에서 도심시가지 중 하나로 급성장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농경지와 과수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던 자리는 공장과 주택가가 대신하게 됐다.
 

▲ 안살도 공장 노동자들의 모습.
▲ 안살도 공장 노동자들의 모습.

토르토나 지구는 나빌리오(Naviglio)와 올로나(Olona) 두 하천에서 공업용수를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고 포르타 제노바역에서 유럽 전역에 화물운송이 가능하다는 뛰어난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1960년대 말까지 약 100년간 밀라노를 대표하는 공업지역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 시기 철도회사인 안살도(Ansaldo), 생수업체 비슬러리(Bisleri), 조명업체 오스람(Osram), 식가공업체 네슬레(Nestle)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토르토나 지구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했다.

그런데 1960년대 말 생산체계의 급격한 변화와 에너지 위기로 인해 토르토나 지구에 자리잡고 있던 기업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안살도는 대부분의 생산라인을 제노바로 옮겼으며 많은 회사들이 다른지역으로 생산공장을 이동시켰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며 석유가격이 최대 4배까지 오르는 오일쇼크 사태가 발발하자 남아있던 공장들 마저도 문을 닫거나 해외로 생산시설을 빼냈다.

토르토나 지구를 가득채웠던 거대한 공장 부지는 순식간에 폐허나 다름없는 공간이 됐다. 수만평에 이르는 부지가 한꺼번에 산업유휴시설화 되면서 일대는 우범지대로 전락했다.

사람들이 떠난 거리는 낮에도 밤처럼 어두웠고 각종 범죄가 급증하며 암흑도시처럼 변해갔다.
 

▲ 19세기 토르토나의 안살도(Ansaldo) 공장 전경.
▲ 19세기 토르토나의 안살도(Ansaldo) 공장 전경.

□ 폐허로 변한 공장지역, 예술가들의 성지로 재탄생하다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토르토나 지구에 구원의 손길이 뻗친 것은 1983년.


이탈리아의 유명 패션잡지 편집장 플라비오 루치니(Flavio Lucchini)는 패션전문기자이자 자신의 부인인 지셀라 보리올리(Gisela Borioli)와 함께 토르토나 지구를 찾았다.

10년이 넘도록 폐건물로 방치된 포르타 제노바역 인근 옛 상들리에 제조공장을 살펴본 그들은 임대료가 저렴하고 접근성이 뛰어난 이곳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문화예술과 관련된 제품을 사진으로 촬영해 잡지, 광고, 홍보물 등에 활용하는 사업으로, 당시에는 획기적인 사업이었다.

사진작가인 파브리시오 페리(Fabrizio Ferri)도 사업에 참여하며 슈퍼스튜디오(Super Studio)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 업체는 오늘날 토르토나 지구가 밀라노를 넘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지구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85년에는 유명 사진작가인 카를로 오르시(Carlo Orsi)가 비아 토르토나(Via Tortona)에 스튜디오를 마련하며 문화예술사업을 시작했고 같은해 루시아노 포르미카(Luciano Formica)도 비슬러리 제조공장의 일부를 개조해 자신의 작업장으로 만들었다.
 

▲ 패션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쇼룸.
▲ 패션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쇼룸.

1987년 또다른 사진작가인 지오바니 가스텔(Giovanni Gastel)은 자신의 작업실인 가스텔 앤 어소시에티(Gastel & Associati)를 비아 토르토나(Via Tortona)로 옮긴 후 세계적인 패션작가로 거듭나게 됐다. 밀라노시는 1990년 철도회사인 안살도(ansaldo)가 사용했던 2만㎡ 규모의 대형공장 건물을 매입했고 이곳을 이탈리아에서 가장 웅장한 오페라하우스라 평가받는 스칼라극장(Teatro alla Scala)의 무대제작실로 활용하고 있다.

대장장이, 목수, 세트 디자이너, 경치 기술자, 조각가, 의상 디자이너 등 150여명이 근무하는 이 무대제작실은 세트디자인, 의상디자인, 세트조립, 기계작업 뿐만 아니라 오페라 출연자들의 합창연습실과 공연 리허설을 위한 무대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밖에 1991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작 ‘최후의 만찬’을 복원한 예술작품 복원전문가인 피닌 브람빌라 바르실론(Pinin Brambilla Barcillon)도 토르토나 내 비아 사보나(Via Savona)에 작업실을 마련하며 수많은 예술작품을 재탄생시켰다.

유명 예술가들이 토르토나 지구에 하나 둘씩 입주하면서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젊은 예술가들도 덩달아 토르토나 지역에 입주를 희망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공장 건물은 예술가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노동자들이 출퇴근길로 이용하던 철도 선로는 패션모델의 런어웨이 무대가 됐다.

근래에 들어서는 아르마니(Armani), 제냐(Zenga), 토즈(Tods)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토르토나 지역에 쇼룸을 설치하고 안도 타다오(Ando Tadao),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이 지역 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토르토나 지역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예술문화 중심지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 토르토나와 흥망성쇠를 함께했던 포르타 제노바역.
▲ 토르토나와 흥망성쇠를 함께했던 포르타 제노바역.

□ 세계 문화예술 허브 ‘토르토나’

토르토나 지구는 2000년대 들어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전시회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브레라(Brera), 람브라테(Lambrate) 등 밀라노의 또다른 시가지와 함께 분산 개최하고 있다.

토르토나 디자인 위크로 불리기도 하는 이 행사는 2004년 설립된 컨설팅업체 토르토나 로케이션스(Tortona Locations)의 주도 하에 매년 4월 열리고 있으며 전세계 160여개국에서 30만명이 넘는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행사 주관업체인 토르토나 로케이션스는 디자인 위크를 포함해 토르토나 지역에서 연간 10여회에 달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 점포 임대를 희망하는 기업 또는 개인에 대한 종합적인 카운슬링을 하며 토르토나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

4㎡에 불과한 작은 가판대에서부터 3천㎡에 달하는 옛 공장건물에 이르기까지 입주 희망자들이 원하는 컨셉에 맞춰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수개월 동안 작업공간을 임대해주고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하는 일과 매우 흡사해 보일 수 있으나 토르토나 로케이션스는 단순히 건물을 임대해주는 것으로만 자신들의 업무를 끝내지 않는다.

토르토나 지구에 입주한 사업자들이 사업설계, 세트디자인, 설비구축 등을 위해 지구 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컨설팅업체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토르토나 지구 내 업체들 사이에서는 인적교류가 활발히 이뤄졌고 자연스레 예술가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이렇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토르토나 지구는 최근 또 한 번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토르토나 지구와 150년을 함께한 포르타 제노바역은 예전만큼 기차가 많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 패션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쇼룸.
▲ 패션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쇼룸.

100m 거리에 포르타 제노바 지하철역(Porta Genova FS)이 개통되며 기차역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대부분 기차가 인근 기차역인 산 크리스토포로역(San Cristoforo)에 멈춰서기 시작했다.

밀라노시는 역 주변 공간을 공원으로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토르토나 지구의 흥망성쇠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토르토나 지구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조프(Zoff)씨는 “토르토나 지구는 산업단지를 문화예술지구로 변모시켰다는 역사적인 배경과 나빌리오 운하와 같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인접해 있는 장점 등이 복합돼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며 “최근 밀라노 내 타지역에 토르토나 지구와 같은 문화예술지구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토르토나 지구 만이 지닌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랜 기간 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글·사진/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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