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 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낮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 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시인이 당신이라고 부르는 시적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처음 만나게 되는 우주 혹은 삼라만상 중의 어떤 대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설레임으로 기다리던 새봄, 새롭게 열리는 눈부신 자연 혹은 그리워 했던 사람과의 만남은 시인의 말처럼 잎잎이 춤추는 한 그루 눈부신 미루나무가 아닐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