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을 이끌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려는 공론화위원회 운영은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제마저 일반인들의 ‘숙의’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접근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유치원생들을 모아놓고 미분적분 수학문제를 풀어보라고 시킨 것과 뭐가 다른가. 애초부터 수험생이 아니면 관심없고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입제도를 인기투표 방식으로 정하는 게 온당한 일인가.
이번 대입개편 공론화의 경우 복잡한 특성을 가진 4가지 시나리오가 선택지가 됐다. 여러 쟁점이 맞물려 있는데 이를 한꺼번에 시나리오에 담았다. 지난 6월 방한한 공론화 창시자 미 스탠퍼드대 제임스 피시킨 교수도 포괄적 선호도를 묻는 ‘시나리오 방식의 공론화’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학 자율’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는 정부정책에 공론조사 결론을 그대로 반영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정부가 지난 1년간 혈세 20억원을 쏟아부어 확인한 결과가 ‘대입개편은 어렵다’는 원론적 상식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시민참여단을 통한 대입제도 공론화는 ‘하도급의 하도급’ ‘폭탄 돌리기’ 등 각종 오명을 떠안았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거나, 극도로 복잡해서 상식적 판단력만 갖고는 접근이 어려운 문제까지 그런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중우정치(衆愚政治)로 가는 지름길이다. 교육부는 ‘학교폭력’과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을 하반기 정책숙려 과제로 제시하고 현재 공론절차를 준비 중이다. 아무래도 이 정부는 시대착오적이고 부실한 직접민주주의의 오류함정에 빠져있지 않나 의심스럽다. 공론화 방식의 문제해결 접근은 포퓰리즘 도구로 악용될 여지마저 다분하다. ‘공직자 패배주의’에 젖어, 책임있는 정책집행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교육부가 적잖이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