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주위덕대 교수·간호학과
▲ 박현주 위덕대 교수·간호학과

작열하게 뜨겁지만 7월의 하늘은 눈부시게 맑다. 옅은 블루 바탕 위의 하얀 구름은 뭉개 뭉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손을 뻗쳐 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뭉개 구름이 예쁘지만 손에 잡히지 않고 영화 속의 아름다운 일상들이 현실에서는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처럼 대학에 와서 가장 기준을 잡기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인성에 대한 교육이었다.

이는 인성이 일정한 교과목처럼 이해하거나 암기하는 이론적 지식습득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삶의 시간 속에 가치관이나 철학 등이 흡수되고 용해되어 일상생활 속으로 표출돼야 하는 지행합일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산·학간 간담회를 하면 대부분은 졸업생들의 근황을 묻고 답하면서 신규 세대들의 문화를 이야기하게 된다. 매번 간담회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단골 메뉴가 신규들의 퇴사방법이다. 퇴사하는 방법이 팩스로 사직서를 보낸다는 말은 벌써 고전이 된 지 오래다. 그 다음으로는 문자로 퇴사를 알리고 최근에는 아예 아무말 없이 무단결근하면 그게 바로 퇴사를 의미하는 것이란다. 이렇듯 웃지못할 에피소드의 수위가 높아지는 만큼 인성교육의 목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그때마다 기성 세대는 요즘의 세태를 한탄하며 씁쓸함을 삼키지만 생각해보면 신규가 기성세대가 되면 또 인성이 척박해진 세태를 운운하는 순환적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대학에서는 인성프로그램이 강화돼 유교식 예절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다양한 인문학적 매체를 활용해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풍부하게 하는 교육을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인성교육이 대학에서 해야 할 교육이냐며 반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인성교육을 통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인재상은 주도적, 도덕적, 공동체적인 인간과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다.

필자는 인성교육을 대할 때면 땅과 식물과 농부의 관계를 생각한다. 엄동설한의 식물들이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긴 동면 동안 싹을 틔우듯 교수자의 반듯함과 열정이 학생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결실을 맺게 되는 자연의 섭리처럼 인간관계나 교육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인간관계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내가 웃으면 상대도 웃고 내가 화를 내면 상대도 화를 낸다. 상대의 행동을 비판하고 나무라기 이전에 그 행동을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상대의 모습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학생들과 정규 수업 이외의 동아리 모임을 가지기를 좋아한다. 그들과 같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제지간으로 규정된 틀 속에서 발견하지 못한 부분들을 보게 된다.

미국의 교육지도자 파커(Parker J Palmer)는 “교직의 어려움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은 우리가 자의식울 가르치기 때문이다. 가르침은 자신의 영혼에 거울을 들이대는 행위이며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학생과 학과를 아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훌륭한 가르침의 필수사항이다”고 했다.

가르친다는 것, 이는 분명 지식을 전달하는 것 그 이상이다. 이 시대의 인성교육 또한 그러하리라.

인성교육이 단순히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가르치고 패스(PASS), 페일(FAIL)로 학점을 부여한다면 이는 인성이 어느 단계에서 습득해야 할 전공교과목의 지식이나 기술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나는 학생들의 인성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외부의 목소리가 높아갈 때면 자신을 되돌아보곤 한다.

“나는 학생들과의 신뢰를 지키는 사람이었나?”, “나는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학생들은 나를 통하여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