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이다. 진도에 갔다. 팽목항에 가느라 세번은 갔었다. 이번에는 다른 일이다. 유배문화를 가지고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유배문화요? 제가 뭘 알 수 있겠어요. 현대문학도 아닌데요. 시문학파 문학관 일 하시는 김선기 선생님, 일단 해보라신다. 그게 벌써 몇 달 전이다.

유배라. 간단치 않다. 호남 도서, 해안으로 유배들 많이 간 건 물론 안다.제주도, 흑산도, 추자도, 완도, 진도 같은 곳. 건너편 남해에도 많이들 갔고. 이런 알량한 지식으로 무얼 말할 수 있나? 조동일 선생 논문에 유배는 서양의 추방 같은 것이라 하던데, 추방이라, 유배라.

추방은 도편 추방이라는 말 있듯 고대 그리스부터 있었고, 기독교 쪽에도 추방은 에덴 동산 시절부터 있다. 누군가 논문에 쓰셨다. 추방은 추방인 것만 아니요, 해방도 해방인 것만은 아니다. 애굽에서의 해방이 그렇고 바빌론에 끌려간 추방도 그렇단다.

바빌론이라. 그러면 1970년대 독일 그룹 보니엠이 생각난다. ‘바빌론 강가에서’가 바로 그 노래였던 것.

좋다. 유배를 호남 해안, 섬들로 와 그곳에서 문화를 이루고 저작을 남긴 것들, 그렇다 치고, 유배 많이도 갔던 윤선도, 해남 윤씨, 85세까지 산, ‘어부사시사’ 40수의 작가를 이야기해 보자.

진도는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멀다. 용산발 목포행 케이티엑스 새벽 5시 10분발. 목포에 7시 반에 도착, 여러 경험을 살려 차를 빌린다. 역에서 버스터미널 가서 시간 기다려 진도 버스 타고 여기저기 서면서 가다가는 아침 10시 시작하는 행사에 늦기 십상. ‘거금’을 냈지만 속은 편타. 목포에서 진도까지 중간에 한 밥집에 들러 차돌박이 된장찌개도 먹고.

“천천히 드셔이.”

서울에서는 요즘 이런 인삿말은 없다. 안쪽 앉는 식탁에 바닷가 풍경 끼고 앉아 호젓한 아침 밥상을 받는다. 마침 에어컨도 틀어줘 이만저만 호강이 아니다.

윤선도, 호사스럽게 살았다고만들 안다. 하지만 서른에 정계에 처음 나가 상소 한 번 올리고 저 북쪽 끝 경원으로 7년 유배, 인생 막바지에도 다시 북쪽 끝 삼수로 쫓겨났다. 세상 뜨기 3년 전에야 풀려나 돌아온 ‘고향’부용동. 사실 그는 서울 태생이다. 그러나 부용동을 고향이라 해보자.

유배의, 추방의 가장 큰 의미, 고향에 돌아와도 돌아온 것이 아니다. 추방이 곧 추방만이 아니듯 유배가 유배인 것만이 아니요, 귀향이 귀향만은 아니다. 그의 고향은 단지 고향이 아니었다.

젊어서 ‘소학’을 좋아했다는 그다. 한편에 유학적, 성리학적 원리를 염오하기도 했던 그다. 그래도 포즈는 늘 군왕주의, 표면을 믿지 말자. 사람은 깊을수록 복잡하다.

국가와, 권력과, 세속 정치와의 끈질긴 대결. 그의 ‘강호가도’시가라는 것들, ‘산중신곡’, ‘산중속신곡’, ‘어부사시사’. 어찌 단순한 음풍농월일까.

멀리 떠남은 그냥 떠나는 길만은 아니리. 검은 흙속 뿌리에 목마름이 있으니, 타는.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