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길수수필가
▲ 강길수수필가

“1조, 공격 앞으로!”

보도블록 위를 걷는데, 왜 이 말이 불현듯 생각났을까. 숱한 세월이 흘렀는데도 잊지 않고 있다니…. 그랬어. 저 작은 무리가 내 기억창고를 클릭하여 불러낸거야. 뒤따라 그 옛날, 군에서 훈련을 받던 때의 한 장면이 마음스크린에 비추어진다.

내 눈은 보도(步道)가장자리 보도블록 위에 멈추었다. 작은 애집개미들이 집을 파고 있다. 모두가 바지런하다. 가까이 다가가 작업광경을 살핀다. 어떤 개미는 제 몸보다 무거워 보이는 모래알을 물고 나온다. ‘내가 개미라면 아마 100 킬로그램이 넘는 돌을 운반해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이 작은 존재가 나보다 위대해보이기도 한다. 한데, 이 개미들은 왜 하필 보도블록 밑에 집을 만들까. 모래 나를 때나 먹이 구하러 다닐 때,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을 위험성을 모르는가. 일어서서 개미집들의 분포를 다시 살핀다. 개미들은 위험성을 감지하는 듯도 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개미집짓기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을 피해 가장자리 보도블록 밑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눈길 따라 생각도 이어간다. 그래. 본능일거야. 개미들은 사람이 다니는 길의 위험성을 천부적으로 느끼고 알기에, 발길이 잘 닫지 않는 곳에 집터를 잡은 거다. 보도블록은 돌처럼 단단해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에 안성맞춤이고, 그 사이는 출입구내기가 쉽다. 또, 밑이 모래여서 파내기도 좋다. 그러니 이 작은 개미들도 지능을 가진 게야. 어쩌면 인간이 ‘본능’이라고 치부하는 생명체들의 유전자엔 설계자의 지능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길어야 몸이 3밀리미터 미만으로 보이는 애집개미들. 맞아. 이 작은 존재들은 본능이든, 지능이든 제 능력으로 보도블록이란 멋진 ‘지형지물(地形地物)’을 집짓기에 이용하고 있는 거다. 따져보면 어릴 때 자연에 뛰놀면서 많이 보았던 곤충, 새, 동물의 집들도 다 지형지물을 이용토록 마련된 자연의 섭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그 어떤 생명체든, 먹이를 구하고 살 곳을 마련해야 하는 틀 속에 있다. 우리 생태계의 이 엄연한 진실이, 개미들이 집을 지으며 만들어지는 조그마한 모래둔덕 너머로 시신경을 자극하며 가슴 속을 후벼 판다. ‘내가, 우리 국가사회가, 나아가 인간사회가 이 애집개미들보다 나을 게 뭔가’ 하는 물음이 하늬바람으로 마음에 불어오기 시작했다. 군대시절 훈련을 받을 때,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은폐, 엄폐를 잘 해야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고 귀가 따갑도록 교관과 조교들로부터 사전에 들었다. 하지만 막상 공격훈련을 시작하면, 머리로 아는 것보다 몸으로 부딪치는 고통회피행동이 더 우선된다는 사실에 맞닥뜨리던 때의 헷갈리던 감정도 되살아난다. 한데, 이 작은 개미들이 지형지물을 주저 없이 잘도 이용하고 있다니…. 지형지물은 말 그대로 땅의 모양과 물체들을 말한다. 군에서는 유형물 곧 언덕, 구렁, 바위, 나무 같은 자연물과 건물, 구조물 등 인조물도 지형지물에 포함된다고 배웠다. 인간생존에 필요한 지형지물은 유형물은 물론, 무형물도 많다고 본다. 국가사회의 규범, 법규, 국가 간의 조약, 협정 같은 것들이다. 고로, 지형지물 이용은 군대뿐 아니라 국가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그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일이 된다.

우리 사회는 남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있는 지형지물에 대한 갈등이 있어 보인다. 한미동맹을 유지 발전시켜야만 자유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는 주장과, 그보다 우리민족끼리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이다. 지형지물이용이란 시각에서 보면, 우리사회는 지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헌법, 교육정책,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국가사회의 중요한 지형지물은 그 명운을 가름할 근본이기에 섣불리 손대어서는 안 된다. 애집개미가 보도블록을 지형지물로 삼아 그 밑에 안전하게 살 집을 짓듯, 우리 사회공동체도 유용한 지형지물을 함께 지키고, 개선하며, 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