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단국대 교수
▲ 배개화단국대 교수

필자는 지난 주말 상하이를 다녀왔다. 여행을 목적으로 간 것은 아니고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갔다. 학회 이름은 ‘하버드-옌칭 연구소 90주년 기념 동창생 학회’였다. 하버드-옌칭 연구소가 학회 설립 90주년을 기념해 지금까지 옌칭 연구소에서 연구를 했던 학자들을 초대해서 학회를 한 것이다. 상하이에서 연구소 스태프들과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서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하버드-옌칭연구소는 1928년 찰스 마틴 홀 (Charles Martin Hall)의 유언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찰스 마틴 홀은 알루미늄을 정제하는 과정을 발명한 화학자로서 그의 발명 덕분에 알루미늄이 대중화될 수 있었다. 그는 또 세계 여섯 번째로 큰 알루미늄 회사인 the Aluminum Company of America (ALCOA)의 창립자이다. 홀은 가족이 없이 중국인 집사와 오랫동안 같이 살았다. 그래서인지 1914년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그는 중국인 집사에게 “아시아의 인문학과 사회 과학” 연구를 위해 자신의 돈을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홀의 피신탁자들은 그의 유언에 따라 하버드대학교와 중국의 연경대학교(지금의 북경대학교)에 각각 하버드-옌칭연구소를 세웠다. 중국쪽 초대 연구소장은 중국의 백화문 운동으로 유명한 후스(胡適)다. 그런데 연경(옌칭)대학교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으로 폐교되고 북경대학교가 됐기 때문에 지금은 미국에만 연구소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에는 주로 중국에 있는 기독교 계열 대학교에 연구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미국과 중국의 국교가 단절되면서 일본, 한국, 베트남 그리고 인도 등의 국가의 연구를 지원했다. 하버드-옌칭연구소의 설립 이후 연구소의 소장들이나 피신탁자-이사들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이들은 모두 홀의 뜻을 존중하고 아시아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발전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운영을 해왔다. 연구소가 자금을 출자해 설립한 옌칭도서관은 미국 내에서 아시아 관련 도서관으로는 최고라고 말해지며 각국의 희귀본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또한 연구소는 아시아 학자들을 초대해서 미국에서 연구할 수 있는 경험을 쌓게 지원한다. 연구소는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등에 있는 파트너 대학의 학자들이나 대학원생을 초청해서 연구비를 지원한다. 지금까지 1천명 이상의 학자들과 300명 이상의 박사후보생들이 이곳에서 연구를 했다. 필자도 2001~2003년 그리고 2015년에 이곳에서 연구를 했다.

필자는 하버드-옌칭연구소는 90년 동안 신탁자의 뜻에 따라서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한국에서는 기금 신탁자의 뜻에 따라 기금이 운영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재단’은 실제 장학금 지원보다는 재단 운영비에 더 돈을 많이 지출했다고 한다. 다른 사례로 2006년 충남대학교가 정심화국제회관을 충남대국제회관으로 바꾸려고 하다가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정심화국제회관은 정심화 할머니가 기부한 50억원으로 지은 것으로 그녀는 김밥 장사로 모은 돈을 작고하기 전에 충남대학교에 기부했다.

아시아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하버드-옌칭연구소는 알루미늄 발명자이자 기업가인 홀의 유언으로 만들어졌다. 홀은 자신이 이룩한 부를 힘없는 사람들(그 때 아시아는 대부분 유럽의 식민지였고, 중국도 반식민지 상태였다)의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인문학에 사용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홀의 유지는 그의 피신탁자들에 의해서 90년 동안 지켜져왔다. 이런 부분에서 필자는 아직 한국과 미국이라는 나라와의 격차를 느낀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홀과 같은 존경할 만한 사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