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정치권 선거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다. 매번 이길 수도 없고, 번번이 지지도 않는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정책정당으로서 미더운 비전을 거듭 내놓아 민심을 얻음으로써 다시 이기는 것이 정상적인 프로세스다. 그러나 냉정히 돌아보면 우리 정치사는 야당이 잘 해서 권력을 차지하는 경우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지방선거에서 치욕적인 참패를 당한 자유한국당의 균열이 상상을 초월한다. 당을 정말 살려내기 위해서라면 리모델링 수준으로는 어림 없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한국당이 슬쩍 인테리어나 바꾸는 방법으로는 되살아날 가망은 없다. 일부 의원들이 반성의 표시로 ‘총선 불출마’라는 결코 쉽지 않은 용단을 내리고 있음은 그나마 주목거리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극복하느냐 하는 대목부터 정리가 돼야 한다. 공공연하게 친박-비박으로 나뉘어 앙앙불락 권력쟁탈전을 벌이던 눈꼴 신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행태가 나타나선 안 된다.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권력의 확대재생산에는 관심이 없고, 권력독식 행태를 보이며 마이너스 게임에 열중하던 자칭 ‘친박 핵심’들의 어리석음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박근혜 정권의 실패 요인을 따지자고 들자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박근혜 정부 패착의 깊이를 얕게 보아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 탄핵은 보수정당의 침체된 이념과 언행에 대한 거듭된 좌절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권의 핵심을 자처하며 으스댔던 친박 핵심들은 아직도 참담한 침묵모드다.

보수의 재건(再建)을 위해서는 누구 몇 사람 십자가에 매달고 지나가려는 식으로 얄팍하게 덤벼서는 안 된다. 극우, 수구꼴통, 꼰대, 부자 편, 묻지마 지지 정치꾼들의 족쇄 안에서 역사를 옹졸하게 바라보아 온 그릇된 보수의 이념바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친박 아집도 부수고, 비박 핑계도 주저앉혀야 한다. 사람 쫓아내는 혁신은 결국 패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인적 청산 그게 필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존재이유부터 찾아야 한다. 이 시대에 대한민국에 왜 자유한국당이 있어야 하는지부터 철저하게 석명(釋明)해야 한다. 구닥다리 곰팡내 나는 뒤떨어진 논리로 민초들을 더 이상 낙담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대화마저 ‘나라를 통째로 넘긴다’는 깃발부터 내둘러 평화를 갈망하는 대다수 국민들을 아연케 했던 고장 난 시계부터 고쳐야 한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현재로서는 절대다수 국민들은 자유한국당이 달라졌다고 믿지 않는다. 아니,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 동안 국민들에게 무릎 꿇어 절하고는 ‘물갈이’ 한답시고 외야에 있는 멀쩡한 신예들 데려다가 바보 강시 꼴 만든 일이 한두 번이었던가. 천하에 제아무리 좋은 인재라고 해도 현재의 한국당 풍토로는 안 된다. 또 다시 썩은 어항에 새 붕어를 집어넣는 초라한 시행착오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어설픈 ‘붕어갈이’로 이 땅 보수정치의 위상을 되세울 길은 없다. 시대변화의 조류와 진정한 개혁적 보수의 이상에 맞는 새로운 노선부터 정립해야 한다. 때로는 진보정당들보다도 더 혁신적인 정책들을 어젠다로 설정해 내놓을 수 있는 열린 정치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야당으로서, 정부의 옳은 정책에 대해 때로는 진정성 있는 박수도 쳐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섬에서 하루속히 빠져나와야 한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물갈이’가 필요하다.

민심에 전혀 닿지 않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부터 청소해야 한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지평과 일치하지 않는 안목을 지닌 정당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한번 떠난 민심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욕심을 비우면 길이 되고, 미련을 채우면 늪이 되는’ 얄궂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