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영 순

황사도 꽃샘바람도 멈칫

절뚝이며 가는 걸음 비켜섰다

지하 동굴 같은 중환자실의 벽을

자유로이 넘어 상근씨는

훌훌 몸 벗고

저리 근엄하게 침묵하고 있으니

청매실 꽃비가 내리는

창 밖은 이월 스무나흐레

멍든 무릎 꺾어 놓던 저녁도 지고 있다

어디서부터 뒤틀렸던가

볕 들 날 없었던 생의

마른 옆구리에 발 내린 씨앗들

떨고 섰는데

반백의 고우들 씁쓸한 술잔에

별이 뜬다

영정 속의 상근씨도 눈 붉어지며

촛불 파르르 눈물 떨군다

이제 왕생원의 광경 속에서

그는 관람객이다

망자(亡者)를 관람객이라 일컫는 시인의 인식이 깊다. 망자는 가난과 질고, 멍든 무릎, 생의 상처와 아픔을 이제는 훌훌히 벗어버리고 진정한 자유인이라 하면 지나친 말일까. 어쩌면 자기의 죽음을 조문하러와 소주를 마시며 눈 붉히는 반백의 친구들을 영정사진 속의 망자도 관람객이 되어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다는 시인의 인식이 잔잔한 감동과 깨달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