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내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저 유명한 시 ‘꽃’은 연가(戀歌)처럼 느껴져 한 때 청소년들이 즐겨 애송하였던 작품이다.

특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는 널리 인구에 회자되던 애송구였다.

김춘수는 모두 두 번의 연작시집을 냈다. 첫 번째 연작시집은 신라의 처용설화에서 소재를 취한 ‘처용단장(處容斷章)’이며, 그의 6번째 시집 ‘처용’에 실렸다. 처용단장은 총 4부로서 제1부는 13편, 제2부는 8편, 제3부는 48편, 제4부는 17편으로 되어 있다.

작년 펴낸 그의 두 번째 연작시집 ‘쉰한 편의 悲歌’(현대문학 간)에 실린 시는 탈속의 노래, 혹은 투명한 맑은 비가(悲歌)다. 이 연작시집은 그동안 끊임없이 실험과 변화를 거듭하면서 시인이 도달한 존재의 심리적 ‘해방’을 위한 ‘무상의 행위’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비의적(秘義的)인 요소’가 극도로 절제되어 있어 작품에 접근하기가 한결 수월하고 편안해졌다. 그렇다고 작품 자체가 느슨해지고 해이해졌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전의 지적이고 비판적인 통찰력은 시어 하나하나에 생생하다.

‘비가’ 시편들에서는 형식상 무의미시와 관념시의 세계가 변증법적인 합일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해결되지 않는 이율배반성’, 즉 없는 ‘구원’과 ‘현실’ 세계의 괴리에서 오는 인간 존재의 원초적인 비극이 ‘비가’ 시편들의 주된 정서를 이루고 있다. ‘비가’ 시편들은 비극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그 비극적 상황을 희석시키는 서정적 울림이 가득해 깊은 슬픔마저 투명해 보이지 않을 정도에까지 이른다.

“하늘에는 눈물이 없다. 하늘에는 / 구름이 있고 바람이 있고 / 비가 오고 눈이 내린다.”

그가 지양하는 세계, 현실과 이상이 분리되지 않는 세계는 ‘눈물’이 없는 세계이다. 현실에서 해방된 순간이다. 그러나 곧 “사람이 살지 않아 하늘에는 / 눈물이 없다.”라는 인식에 다다른다. 바꿔 읽으면 ‘사람’이 사는 이 현실 세계는 ‘눈물’로 상징되는 비극의 세계다. ‘눈물’의 세계의 사람들은 ‘눈물’의 세계의 사람들일 뿐 ‘하늘’에 속하지는 못한다. 때문에 ‘눈물’ 그 자체인 인간은 다음처럼 변주된다. “눈물은 어느날 길모퉁이 / 땅바닥에 떨어졌다. 한 번 다시 / 날개를 달기 위하여 눈물은 / 꿈을 꾼다. 그러니까 / 그러니까 눈물의 고향은 / 하늘에 있다.” ‘눈물’과 ‘하늘’ 이 둘의 이율배반성이 시인으로 하여금 ‘비가’를 노래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도 비극적인 인식을 이처럼 담담하고 서정적으로 표현한 시인은 없었을 것이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 내놓는 ‘쉰한 편의 悲歌’는 시적 대상과 서정적 자아가 너무도 투명하게 하나로 합일되어 있다.

시인은 이 시집을 “시작 행로의 또 하나의 과정”이라고 밝혔다. 읽는 이는 그 행로를 따라가며 행간 행간에 멈춰 서기만 해도 ‘현실’이 투명하게 밝아져, 현실과 이상이 조화를 이루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이정옥 위덕대 국문과 교수>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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