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용 한
비 맞는 구인사
흰 철쭉은
벼랑 끝에 저 혼자 피어
한 포기 일생을 비에 다 적시고도
오는 비를 마다 않고
어린 비구의 염불 외는 소리에도
백발성성 노인을 꿈쩍도 않고
구봉팔문 제사봉 수리봉 칠봉
사방 불끈거리는 힘에도 까딱 않고
벼랑 위 주목나무가 떨구는
감로(甘露)조차 받아 마시지 않고
그 위태로운 자세 꼿꼿이 세워
그저 면벽수도하는
스스로 칡넝쿨 헤치고
초암(草庵)을 얽어 참선하는
구인사 흰 철쭉
비 맞으며 벼랑 끝에 서 있는 산사의 흰 철쭉꽃을 보며 시인은 인생을 생각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이라 할지라도 꿋꿋이 견디며 자신을 지켜내겠다는 강단진 결의와 다짐을 보여주고 있다. 불구의 세계로부터 훼절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겠다는 시인정신을 읽을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