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원수필가
▲ 박창원수필가

지난 봄, 조현민씨의 이른바 ‘물컵 투척’사건이 일어나고, 이어 이명희씨의 폭행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국민들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닐 것같은 물컵 투척에서 불거진 갑질 논란이 내부 고발로 이어지고 여기에 밀수, 탈세, 횡령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그룹 전체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으로 번지고 있으며 한진그룹은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사건의 중심에는 이 시대 화두의 하나인 ‘갑질’이 자리하고 있다.

갑질이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말한다. 갑질은 권력에 기생하기에 계급사회일수록 심했다. 조선시대 내연산 계곡을 탐승하던 관리들도 보경사 승려들에게 갑질을 했던 모양이다. 그 시절 관리들은 명승지인 내연산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너도 나도 보경사로 향했고, 그들은 보경사 스님들이 메는 남여(藍輿)라는 뚜껑 없는 가마를 타고 연산폭포 근처에까지 올랐다. 1587년 황여일이 내연산을 탐방하고 쓴 글에 보면 자신을 폭포까지 안내한 스님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의 폭포 관광을 위해 최소한 6명의 스님들이 동원됐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기록에는 조선시대 지방 관장들이 내연산 구경을 오게 되면 보경사 스님들이 절앞에서 가마에 태워 내연산의 험한 길을 돌아다니며 곳곳의 좋은 경치를 구경시켜 주는 큰 폐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을의 반란’이 일어난다. 철종 말년에 현감 길진구가 내연산 구경을 하러 보경사에 왔고, 홍운 스님이 가마에 태워 골짜기를 올라가다가 일부러 미끄러져서 남여를 깊은 개울물로 떨어지게 하는 사고를 냈다. 물에 빠진 현감을 군노들이 건져 내어 간신히 목숨은 구했는데, 그 뒤부터는 관장들이 와도 스님에게 남여를 맡기지 않았다 한다. 조선시대 지방 관장에 의한 갑질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최근 몇 년 간 우리는 갑질 때문에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사건을 여럿 경험했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갑질, 미스터피자 갑질, 대기업 CEO의 운전기사 폭행, 군 공관병에 대한 군장성의 갑질 등이다. 그 전에도 갑질은 분명히 있었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았다. 문제는 시대가 변했고, 사회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사회가 더 이상 이를 용납하지 않는 시대에 와 있다. 경영자들이 그걸 인식하지 못한 채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기업과 사람을 경영하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생기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우는 2014년 소위 ‘땅콩 회항’ 사건으로 홍역을 한 번 치렀다. 이때 뼈를 깎는 아픔으로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비록 갑질 당사자가 처벌을 받기는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어물쩍 넘어가고, 국민들이 잊을만하니까 슬그머니 업무에 복귀시킨 행위는 화를 키운 전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윤리경영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윤리경영이란 법적 책임의 준수는 물론,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적 기대를 기업의 의사결정 및 행동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왜 윤리경영을 해야 하는가. 이해 관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한 기업은 소송 등으로 재무적 손실을 입어 존폐기로에 설 수 있으며,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경영활동조차 국민정서와 충돌할 경우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글로벌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이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일이 폭로되면서 세계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이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은 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요즘 회사가 망하는 건 불경기나 유동성 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윤리경영에 실패하면 망한다. 그러기에 윤리경영이 곧 경쟁력이라는 말도 나온다. 갑질 논란으로 촉발된 이번 한진그룹 사태는 우리 사회에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